강남(에 사는) 엄마

61. 엄마는 극 내향형 인간이야...

by Aloha J

아이가 어린이집, 외부 활동에서 알아오는 다양한 캐릭터 중 포켓몬에 한참 빠졌던 때가 있다. 더불어 가오레라는 게임기에서 나오는 게임칩에 큰 호기심을 가졌다. 운동 수업을 마치고 "나 오늘 가오레 하러 간다!" 하며 신난 친구들을 보면서 아이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 게임을 하면 게임칩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해야 얻을 수 있다니..

그중 한 엄마에게서 가오레 게임기가 있는 곳에 가면, 레벨 낮은 1성, 2성, 3성 게임칩을 그냥 버려두고 가는데, 누구나 갖고 가도 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오!

대문자 I, 내향인지수 90%를 자랑하는 나이지만, 내 자식을 위해 그 정도쯤이야. 퇴근 후 가오레 게임기 위치를 확보하고, 장소에 도착하니 가오레 마니아인 성인들이 앉아서 현란한 손짓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두 대의 게임기 사이에 딱! 자리 잡고 있는 그 게임칩 바구니. 왜 하필 거기 있어..;;; 들어가기 너무 망설여지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난 엄마다, 울 애기가 갖고 싶어 하는 게임칩이 저기 있다. 물러설 것인가. 아이만 생각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갔다. 바구니를 뒤적거리면서 어찌나 땀이 나던지... 순간 아찔해진 나는 대충 몇 개를 챙겨 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손에 쥔 대여섯 개의 칩을 만지작대다가, 내가 또 언제 여길 오겠나.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 많이 있던데.. 좀 더 챙겨볼걸... 하며 쿵쾅대는 마음을 부여잡고 다시 가서 갖고 올까, 아니면 그냥 갈까 생각했다. 두 바퀴 정도 주변을 돌며 고민하다가 다시 가오레 게임기 앞으로 갔다. 아... 그 마니아들은 아직도 게임 중이구나...

한 번은 어렵지 두 번은 괜찮다고 누가 말했던가. 두 번도 어려웠다. 하지만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겹치지 않게 다양한, 아이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 게임칩을 골라서 가방에 넣었다. 하!! 끝이다. 해냈다!! 등에 땀이 꽉 찰만큼 긴장되고, 민망한 이 미션을 해냈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가방 속으로 손을 넣고 만지작거려 보니 30개였다. 후훗, 만족스럽다.

누군가는 이게 뭐 그렇게 부끄러울 일이냐고 하겠지만, 누군가가 버리고 간 걸 작정하고 주우러 다니는 게 내게는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불로소득 아닌가... 혹시 이게 가져가면 안 되는 거였다면 난 지금 무슨 일을 한 거지??

집에 가서 게임칩을 하나하나 알코올로 닦고 말렸다. 집에서 보관하고 있던 예쁜 파우치 가방에 칩 30개를 넣었다. 게임칩이 많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던 아이 표정 하나 때문에 퇴근길 이 우스꽝스러운 일을 해냈다. 그런데 뿌듯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원 후 제 보물 상자에서 몇 개 안 되는 게임칩을 (그것도 친구들과 형들에게서 얻은..ㅋ) 만지작대는 아이 옆에 앉았다. 그리고 준비한 깜짝 선물을 건넸다. 토끼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해 같이 웃는 아이. 이거 때문에 그토록 땀을 흘렸던가.

"엄마,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신나요! 오예!"

어디서 이렇게 많은 게임칩을 갖고 왔냐고 묻길래

"엄마가 울 아들 주려고 멀리 좀 다녀왔어." 하고 은근슬쩍 넘어갔다.

그 뒤로 4성 5성이 더 멋진 게임칩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이미 가오레 게임을 졸업한 회사 동료들의 아드님들이 물려준 게임칩으로 아이에게 5성 게임칩을 선물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한 마을(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이 상황에도 살짝 적용되는 거 맞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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