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가만히 바라보기
핸드폰 속에 저장된 만 장도 넘는 사진 속에는 아이의 모습이 첫날부터 담겨있다. 사진을 USB에 옮겨 두고도 지우지 않는 건 수시로 아이의 첫 모습, 뒤집던 모습, 걷는 모습, 우는 모습등.... 그 예쁜 모습을 언제나 보고 싶어서다.
엄마라는 말을 처음 한 날부터 아이가 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면 마음이 울컥하다.
이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담아주지 못한 게 아쉬워서....
지난주 월요일, 갑자기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하는 아침 눈 뜨자마자 대성통곡을 했던 아이.
"그럼 오늘 00 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계획해서 적어볼래? 어린이집에 가지 않아도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집에서 똑같이 해야 하거든."
눈물을 닦으며 금방 배시시 웃더니 연필로 노트에 적은 아이의 계획은 이랬다.
-아침 먹기, 양치하기, 닌자고 놀기, 점심 먹기, 받아쓰기 1장, 연산 2장, 집중 듣기 1시간, 책 5권 읽기, 엄마랑 놀고 저녁 먹기, 예배드리기, 렌즈 끼기-
야무지게 하루를 잘 계획했다. 아침 먹기를 시작으로 놀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아이의 계획을 유도했더니 설거지 후 받아쓰기 시간이 되었다. 15분 받아쓰기할 것들을 공부하고 시험을 봤다. 아이의 요청으로 시험은 2번 봤다. 100점, 90점. 틀린 문제는 3번씩 다시 써보면서 공부하고 나니 아침이 훌쩍 지나갔다.
아이가 노는 동안 점심을 준비하고, 먹고 나서 바로 연산문제집을 2장 풀고 집중 듣기 1시간을 했더니 오후가 다 지나갔다. 아, 생각보다 바쁘구나. ㅋㅋㅋㅋ
저녁을 먹고 나서 엄마와 책을 읽고났더니 하루가 다 끝났다. 책을 정리하면서
"엄마, 오늘 정말 알차게 보낸 거 같아."
"응, 참 알찬 하루였어. 우리 아들 대견해!"
아이의 놀이로 채우지 않고 계획에 따라 하루를 지내니 아이 앞에서 아이를 관찰하게 되는 기회가 많았다.
받아쓰기 공부를 하면서, 연산 문제집을 풀면서.... 아이가 종알 종알 이야기하는 모습을 가만히 집중해서 바라봤다. 오랜만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만 집중해서 내 앞에 앉은 아이의 예쁜 표정과 그칠 줄 모르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참 예쁘구나. 말하는 모습에 아직 아기 모습이 있는 것도 귀엽고, 연필을 잡고 집중하는 모습에는 앙다문 입술과 볼록하고 발그레한 두 볼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이가 책을 볼 때 주방에서 밥을 짓고,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앞에서 밀린 일을 하느라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했는데, 참 오랜만에 아이 모습에만 집중했더니 아이의 감정이 오롯이 엄마에게 전달됨을 느꼈다.
아이의 마음 읽기가 참 어려웠는데, 아이의 모습에 오로지 집중한 그날은 아이의 마음이 읽어져서 마음이 편해졌다.
바쁘다는 이유는 결국 다 내 핑계였구나 싶었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아이 마음 읽기가 가능해진다는 걸 어리석은 엄마는 이제야 느끼는구나...
내 마음의 조급함을 내려놓았다면 아이의 마음을 좀 더 많이 알아채줄 수 있었을 텐데...
그날 이후 자주 손의 노트북을 접고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의 입술을 바라보고 아이의 씰룩이는 눈썹을 집중한다. 아이의 움직이는 반짝이는 눈동자를 따라간다. 듣기 시험을 하듯 아이 이야기에 집중해 본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마음이 한없이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계속 자라지만 아이는 오늘 더 사랑스럽고, 오늘 더 귀엽다. 아이의 움직임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사부작대는 저 귀여운 팔다리도 눈에만 담기 아까울 정도다.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이도 엄마 앞에서 더 신난 모습이 보인다.
아이의 마음 읽기가 제일 힘들었는데, 이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고 감사한 요즘이다.
오늘도 가만히, 오롯이 아이만 바라본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아이의 표정을 지긋이 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