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불편하면 치운다.

강남(에 사는) 엄마

by Aloha J

조금만 방심하면 낮은 책장 윗 공간과 식탁, 아일랜드 식탁까지 아이와 내 책으로 점령당한다.

아이가 식탁에 앉을 수 있는 때부터 낮고 큰 식탁을 들였다. 우리는 그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고, 김밥을 말기도 하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책을 높이 쌓아두고 한 권씩 신나게 읽기도 한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각자의 공부를 하거나 블록을 쌓는 곳도 식탁이다.

거실에서 주로 함께 있는 시간을 감안해서 아이의 책장과 내 책장을 거실로 끌고 나왔다. 제법 높은 책장 3개를 눕혀서 낮고 긴 책장으로 공간을 정돈했다.

그래서다, 손이 닿는 이 만만한 빈 공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책들과 색종이로 점령을 당하는 거다.


식탁과 책장 상판만큼은 깨끗하게 사수하고 싶은데도, 책과 물건이 파도처럼 밀려와 우리의 쾌적한 기분을 앗아갈 때쯤이면 아이를 재우고 저녁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감지한다.

어제저녁, 한계치에 가까워진 불편한 기분을 정리해야만 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뒤 돌아본 식탁과 책장은 방금 이사 온 집 같았다. 이렇게 환경이 어질러져 있으면 더 쉽게 피로해지고 마음은 여유가 없어진다.

타이머 1시간을 맞추고 정리를 시작했다. 요즘 부쩍 읽고 싶은 책이 많았는데, 결국 알음알음 사들인 책들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 중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지를 훑어서 당장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책들은 잘 보이는 칸에 가지런히 두고, 언젠가 보겠지만, 딱히 지금은 아닌 책들은 한 팔에 안아 책서랍으로 데리고 갔다.

집안 정리 중 가장 어려운 게 내 책 정리인데, 언젠가도 읽지 않을 책들도 작심하고 추려냈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올려진 '나의 언젠가....'들을 모조리 치우고 나니 살아야 하는 오늘이 지금이 보였다.

아무것도 올려지지 않은 식탁과 책장, 깨끗하게 정리된 아일랜드 식탁을 보면서 내일 아침 일어나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을 아이의 시선을 생각했다. 기분, 좋겠지?


아침, 누구보다 먼저 정돈된 공간을 만끽했다. 이렇게 정리가 되면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 어지르고 지내겠지만, 또 며칠은 이 말끔함을 즐기며 의욕 넘치는 하루를 보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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