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는 걷고, 또 걷지.
오늘은 원에서 숲체험이 있는 날.
팔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 가정보육을 선택했다.
이른 아침에는 구름에 덮이는가 싶더니 오후에는 맑간 가을 날씨다.
청량하다. 집에만 있을 순 없지.
깁스 이슈로 운동량이 부쩍 줄어든 아이.
첫 일주일은 골절된 부분이 큰일 날세라 최대한 안정을 취했더니
아이가 눈에 띄게 쉬 지쳤갔다.
아, 이건 아니구나. 갑자기 떨어지는 체력을 보면서
이른 하원 이후의 시간을 동네 걷기로,
주말은 무조건 나가기로 채웠다.
깁스를 한 채로도 망아지처럼 폴짝대는 아이를 보면서
이 정도는 움직여도 되는 거란 걸 체감했다.
혹, 매헌 시민의 숲에 단풍이 이미 한창이진 않을까
조바심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나갔다.
흠, 급한 내 마음과 달리 아직 여유로운 단풍나무들.
한 그루만 단풍이 들고, 다른 나무들은 아직이다.
덕분에 아이와 공원을 걷고, 동네로 들어왔다.
교보문고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 걸어가 볼까?"
"좋아요!"
씩씩한 대답만큼 체력이 부디 따라주길 바라면서 아이 손을 잡고
열심히 걸었다.
만 6세 치고는 굉장히 잘 걷는 편인데,
어느샌가 길쭉해진 다리는 이제 엄마 걸음의 속도를
제법 맞출 줄도 안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서 천천히 쉬엄쉬엄 걸었었는데..
며칠 전 내 속도의 70%를 내어도 무리 없이 걷는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한참을 안고 다녔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볼 때는
또래보다 큰 키라 큰 애로 오해받아서
"엄마 힘들게 아직 안겨? 걸어야지."
라는 말도 자주 들었지만, 아기는 제 나이만큼 자라는 중이라
꼭 안겨서 자랐다.
"엄마는 울 애기랑 손 잡고 산책하는 게 꿈이야."
만 3세 때 이 말을 해주며 천천히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고 조그만 아기가 뭘 기억할까 했는데..
고맙게도 엄마의 한 마디를 소중히 마음에 담고 자랐다.
잘 걸었고, 그렇게 둘이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들어가 걸었다.
반달이 예쁘게 뜬 하늘을 보며 돌아오는 길,
"엄마, 나 정말 잘 걷지?"
"응! 우리 아들이 걷기 1등일걸?!"
어깨를 으쓱하며 애쓰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아이.
틈만 나면 걷고, 틈만 나면 산책길로 나가는 엄마를 따라
잘 걷는 아이가 무척 대견하다.
'아들의 뇌' (곽윤정 작가 지음)에서 그러지 않던가.
아들은 공부를 시키려면 먼저 운동을 시키라고.
"엄마랑 이렇게 조잘조잘 재잘재잘 이야기 하며 걷는 거 너무 신나."
라고 말하는 아이를 꼭 안아줬다.
가을의 단풍 유희는 주말로 기약하며
오늘 하루도 잘 걷고, 책도 잘 보고
조재(아들의 표현으로 조잘조잘 재잘재잘의 줄임말이란다.) 이야기하며
저녁을 맞은 우리의 하루가 제법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