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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하와이 탈출기  (1)

산 넘어 산

요즘 '오미크론'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다시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많은 나라들이 각각의 방법들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를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과 시시각각 변하는 출입국 정책들을 보니 나의 하와이 탈출기가 생각난다. 연말연시이니 잠시 쉬어가는 코너로 하와이 탈출기 이야기를 풀어본다.


나의 '완벽한' Plan A는 2020년 5월에 졸업식이 끝나면 바로 한국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3년 만의 한국행이라니! 생각만 해도 벅차올라왔다. 하지만, 유학생들에겐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었으니, 바로 '졸업 학기가 다가오면 항상 사건,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이다. 이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며 자신만만하던 나도 예상치 못한 복병을 하나 만났다. 바로, 이젠 이름만 들어도 넌더리가 나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이다. 3월 초까지만 해도 비행기 표는 살아있었지만, 3월 중순이 되면서 비행기 표의 '여행 일정'이 시시각각 변하였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변경되는 건 예사였고, 그냥 아예 갑자기 비행기표가 취소되었다가, 다시 새로운 비행 스케줄로 변경이 되기도 하였다. 매일매일이 비행기표 때문에 난리부르스였고 야단법석이었다. 나중엔 또 변경되어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올라갔다.


왜 이렇게 비행기 스케줄이 야단법석인가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초반에는 많은 공항들이 셧다운 (shut down)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여행객은 물론이거니와 꼭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마저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직항은 당연히 거의 없었고,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표들 마저 티켓값이 고공행진이었다. 기본 두세 배는 껑충 뛰어올랐다. 비행기를 꼭 타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비행기 운행 횟수는 갑자기 0에 가까울 정도로 없어져서 그런 것이라 짐작했었다. 설사 비행기 티켓 예약에 성공했어도, 경유지로 가는 비행기 편이 오늘은 살아있어도 내일은 갑자기 캔슬되는 일들이 빈번했다. 나는 이미 기존 항공권이 있었고, 항공사의 사정에 따라 스케줄이 변동되거나 취소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비교적 쉽게 변동되는 스케줄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리 비행기표를 사뒀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  


호놀룰루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완전히 막혀버렸다. 예전에 무한도전의 하와이 편에서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벌칙이 있었다. 미국 본토를 찍고 다시 한국으로 가는 벌칙이었는데, 그 경로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미국 본토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안정적인 비행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지만, 호놀룰루에서 샌디에이고나 엘에이로 나가는 비행기 표가 끝까지 말썽이었던 기억이 난다. 8월에 한국으로 출국하면서 확정되었던 나의 비행 스케줄은 무한도전의 벌칙 경로와 똑같은 [호놀룰루 → LA → 인천]으로 여정이었다.


호놀룰루 → LA : 대략 6시간 비행

LA : 8시간 대기

LA  → 인천: 대략 14시간 비행


분 단위는 올림을 한 시간이다. 총 비행시간만 20시간이고 대기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28시간의 기나긴 여정이다. 호놀룰루에서 인천으로 가는 직항은 길어야 10시간이면 충분한데, 2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지라 생존을 위한 준비를 단단히 했다. 28시간이 걸려도 좋았다. 일단 한국을 갈 수 있다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100시간이 걸린다고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선 미국 국내선에서는 나름 긴 시간 비행이더라도 베개와 담요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모든 짐들은 다 버린다고 하더라도, 목베개와 두툼한 담요, 쿠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는 인형은 꼭 챙겼다. 따뜻하고 편한 후드티와 편한 바지, 그리고 여벌의 간단한 옷도 챙겼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출국하는 날.

공항 가기 몇 시간 전 갑자기 항공사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LA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6시간이 더 늘어나서 총 14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대만에서 한국으로 올라오던 태풍 바비와 나의 비행기가 인천에 도착하는 시간이 똑같아서 어쩔 수 없이 딜레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항공편이 취소가 안된 것이 어디인가. LA에 도착해서 14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페이스 실드와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한 후, 호놀룰루에서 LA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에 올랐다. 미국 국내선은 정말 베개와 담요 어느 것 하나도 제공되지 않았다. 기내 안은 냉동고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너무 추웠지만, 당황하지 않고 기내용 가방에서 두툼한 담요를 꺼내 둘둘 말고 누워서 갔다. 나의 자리는 이코노미석이었지만 사람들이 없어서 비즈니스석처럼 여유롭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미국 국내선의 기내식은 간단한 비스킷, 에너지바, 과자, 견과류, 물티슈, 물이 지플락 (ZipLoc) 봉투에 담겨서 제공되었는데, 만약을 위한 비상식량으로 보관했다.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 바라본 일출.
공항에서 바라본 다이아몬드 헤드와 호놀룰루 스카이라인.
비행기 날개 왼쪽에 보이는 큰 짙은 갈색 산이 다이아몬드 헤드이다.

LA 도착.

보통 14시간 딜레이가 되면 '잠시 LA 구경을 해도 되겠다!' 혹은 '근처 호텔에서 잠시 눈 좀 붙이면 되겠다!'란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필자인 나도 당연히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당시 공항은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공항 밖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다시 열체크부터 시작해서 모든 수속을 다시 다 밟아야 했다. 이건 할 수 있다고 해도, 무엇보다 어느 공항이든지 공항으로 오고 가는 교통편이 정말 불안정했기 때문에 쉽사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당시 한국은 공항에 방역 택시나 방역 버스, 그 이외의 다른 모든 교통수단들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이런저런 불안정 요소들을 감내하고 터미널을 나가는 것보다는 공항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가장 체력 소모가 적으면서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영화 터미널 따라잡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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