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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빛 별들 속을 헤엄치다.

연우: 안개처럼 부옇게 내리는 비

연우 (Mist), 2020, 캔버스에 아크릴, 182.9 x 137.2 cm, 현 Hawaii State Foundation on Culutre and the Arts  소장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다시 01화에서 언급되었던 여우비 설화로 이동한다. 여우비 설화가 낯선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다시 적어두자면, 여우비는 화창한 날에, 해가 떠 있는 상태에서 내리는 비를 일컫는데, 이는 여우가 호랑이에게 시집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이란 말로도 전해지기도 한다. 여우를 짝사랑하던 구름이 숲 속에서 열리는 결혼식을 보고 울었는데, 이 눈물은 인간 세상에 비로 내려오게 된다. 구름이 눈물을 그치고 여우의 행복을 빌어주면 인간 세상에도 비가 그치고 다시 해'만' 쨍쨍한 날로 돌아온다.


설화의 끝은 여느 동화들처럼 '여우와 호랑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맺고, 그 이후의 구름은 어땠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과연, 구름은 울음을 그치고 나서,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어느 날로 바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란 궁금증이 날 감싸 안았다. 내가 마음의 위안을 받던 곳은 어디였을까 생각해보다, 도착한 곳은 하와이의 밤하늘이었다. 짙은 감색*에 보랏빛이 어우러진 하늘에 반짝이는 작은 별빛들, 정월대보름이 아닌 그저 평범한 어느 날인데도 둥글게 보이는 보름달, 그리고 도시의 조명이 비춰서 밝게 빛나는 하얀 잿빛의 구름들. 이 모든 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 그 자체였는데 밤수영까지 곁들이니 정말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구름'에게도 이 밤하늘을 보여 주면서 '너도 저 하늘을 보며 수영해봐. 부옇게 아려오는 감정의 잔탄들이 풀어질 거야.'란 말을 건네보고 싶었다. 


저 그림을 그리던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감빛 별들이 찬란하고 맑은 하와이의 밤하늘이 참 그립다. 한 12여 년 전, 가족들과 하와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처음, 숙소에서 밤 수영을 처음 해봤었다. 밤 수영이 차갑지가 않다니! 그리고 별들도 볼 수 있다니! 정말 신세계였다. 시간이 흘러 대학원을 다니면서 해가 떠 있을 동안의 스케줄이 마무리되면 꼭 저녁을 간단히 먹고 학교 수영장으로 운동하러 갔었다. 실내 수영장이 아닌 실외 수영장이고 규격은 국제 수영장 규격에 맞게 지어져서 밤하늘을 보며 수영할 수 있었다. 바람이 찬 겨울에는 수영장 물이 알맞게 따닷하고, 바람이 따뜻한 날엔 물이 적당히 알맞게 차가웠다. 밤하늘을 보며 수영하는 맛이란! 오롯이 나만을 위한, 그리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힐링 시간이었다. 어쩌면 가족 여행 때의 좋은 기억이  다시 가고 싶게 만들어졌고, 내 무의식의 열망은 기어이 다시 그곳으로 가서 공부하며 잠시간 살게 된 것 같다. 여기서 공부했던 기억은 힘들었지만 좋았기에매년 호놀룰루로 가보고 싶단 나름의 인생 버킷 리스트도 만들게 되었다. 언젠간 매년 12월에, 호놀룰루 마라톤 뛰러, 그리고 밤 수영하러 하와이로 뛰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엄청 수영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실제로는 정 반대이다. 나의 수영 철칙 이자 철학은 '발이 반드시 수영장 바닥에 닿으면서 코로 숨을 쉴 수 있는 깊이여야 할 것'이다. 이 이상 조금이라도 물이 깊어지면 내가 물속에 갇혀버릴 것 만 같은 묘한 공포감이 나를 휘감는다. 왠지 어디선가 상어나 켈피*가 툭 튀어나올 것만 같기도 하다. 딱히 물놀이 사고를 겪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러나 싶다. 그래도 수영 배우기와 수영하기는 꽤 좋아하는 편이다. 단지 원인 모를 공포감, 부족한 근력과 지구력이 문제다. 이런 물 공포감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 없어진다기에, 졸업 논문 및 디펜스가 끝나면 학생 할인을 받아 저렴하게 배워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여하간, 이런 나도 계속 수영하러 가게 될 정도로 좋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짙은 보랏빛 감색 하늘을 바라보며, 

호놀룰루의 도시의 불빛들과 별빛을 받아 하얗고 맑은 잿빛 구름들을 바라보며,

별들의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함께 느끼며,

어렴풋이, 그리고 아련하게, 쓱 스쳐 지나가는 겨울 민트향이 담겨 있는 찬 열대 밤공기를 맡으며,

다시 기숙사로 돌아갈 땐 사이프러스 나무처럼 생긴 몇 그루를 지나가며 '아 고흐가 봤던 나무들이 이런 것이려나?' 하며 나 혼자 즐거운 상상을 해보던,

감빛 별들 속을 헤엄치던 시간들. 


여우의 결혼식을 본 그날 밤, 과연 구름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과연 나만의 힐링 방법이 구름에게도 통했을까.

여러분들이 구름에게 제안하고 싶은 힐링 방법은 무엇일까.

부디, 구름이 마음을 잘 추슬러 다시 새 출발할 수 있길.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각자의 힘듦이란 늪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길.



*감색은 검은색에 가까운 아주 짙은 남색 혹은 그 쪽빛을 가리키는 국어 단어이다. '아니, 감색이 뭐야? 곤색 아니야?'라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꽤 계실 것 같다. 곤색은 감색에 해당하는 일본어 콘이로 (紺色、こんいろ)에서 파생된 단어인데, 한동안 (그리고 꽤 오랫동안) 곤색으로 사용되는 빈도가 높아졌다. 바른 한국어는 감색이니 가능하면 곤색보다 감색을 사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켈피는 해리 포터에 나오는 모습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수중 괴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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