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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덥고, 시원하고, 따뜻한 27℃

여름 속 겨울 혹은 겨울 속 여름

여름 속 겨울 (2019), 캔버스에 아크릴, 76.2 x 76.2 cm, 현 Mayor's Office of Culture and Arts 소장


2019년 1월 경이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실제로 눈이 내렸다는 뉴스가 엄청난 화제가 될 정도로 하와이도 많이 추웠다. 역대급 추위라고 주변이 시끌벅적할 때, 나는 코끝이 쨍하게 얼고 손이 시린 느낌을 오랜만에 느껴서 너무 좋았었다. 본디 겨울을 참 좋아하던 나였기에, '겨울 내음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너무 좋다.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것 같다'라고 짧은 글을 스케치북 모퉁이에 휘갈겼다. 2번째로  맞이하는 여름나라의 겨울이었기에 그리운 것들이 많았다.


첫눈의 설렘이 그리웠다. 

코끝이 쨍하게 어는 그 느낌이 그리웠다.

겨울바람 속에 숨겨져 있는 소나무 향 혹은 겨울 민트 향이 너무 그리웠다. 

스웨터에 어그 부츠, 그리고 목도리와 장갑이 그리웠다. 

따뜻한 라떼나 핫코코아에 손을 녹이고 있는 그 순간도 그리웠다. 

곶감, 그리고 햇 곶감으로 담근 수정과, 붕어빵도 먹고 싶었다. 

11월부터 들려오는 캐럴도 찬 공기를 맞으며 듣고 싶었다. 


'여름 속 겨울'을 신나게 즐기고 있던 나는 과연 사전적 정의의 '겨울'이란 계절의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이해를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 조차도 분명히 '에이, 하와이에 겨울이 어디 있어?' 라며 MSG를 잔뜩 친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면, 나 자신조차도 하와이 하면 365일, 24/7 여름인 곳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와이의 계절감은 어떨까. 항상 여름인 하와이는 보통 27℃에서 기온이 왔다 갔다 한다. 하지만, 이 숫자는 의미가 없다. 조금 오래 살다 보면 이 온도 안에서 춥고, 덥고, 시원하고, 따뜻한 모든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좀 더 쉽게 설명을 해보자면 0.1℃차이에 예민해지는 느낌이랄까. 여름 안의 여름, 즉 사계절이 있는 곳의 계절도 여름이 되면, 나는 햇빛이 너무 따가웠고, 햇빛의 열이 너무 더워 짜증이 날 정도이다. 한국의 삼복더위는 이제 더 이상 엄청나게 덥다고 느낄 정도가 아니다. 사계절이 있는 곳의 계절이 겨울이 되면, 하와이에도 겨울이 찾아온다. 항상 일정한 기온을 유지할 것 같지만, '겨울'이 되면, 기온은 보통 22℃정도 까지 내려가고,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온다. 나는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더 춥게 느껴졌다. 열대 지방에서 살지 않는 분들이 이 온도를 본다면 '겨울'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더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지인이나 비교적 오래 산 사람들 중에서는 후드티나 패딩조끼, 카디건 등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현지인과 관광객을 나누는 법은 (1) 반팔을 입었는가, (2) 바닷물에 들어갈 수 있는가, 두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는 농담도 있다.


'힒듬' 혹은 '고난'을 흔히 '겨울'이란 계절로 종종 비유하여 말한다. 

각자의 '겨울' 즉 힘듦은 다 다르다. 어쩌면 반대로 '여름'이 힘든 이도 있을 것이다. 겨울이 힘든 이에겐 여름이, 그리고 여름이 힘든 이에겐 겨울이 항상 근처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무언가 잘 풀릴 것이란 희망, 기대를 품고 버텨내는 것도 좋고, 좋아하는 무언가를 하거나 먹거나 하면서 잠시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어도 좋다. 나의 그림이 편견 없이 많은 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 마음의 위로를 건네며 다시 활기차게 새 출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그림으로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면, 작가로서 참 행복할 것 같다. 그렇기 위해선 나 먼저 세상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느끼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확실히 나이 먹을수록 사고와 마음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여름 속 겨울'의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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