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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 여긴 어디?

아니...? 여기, 미대 아녔나요? 

오늘 글은 이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매일 글쓰기 전쟁을 치르던 나의 일기를 기록해두고자 한다.

일기 (Diary, 2019), 캔버스에 아크릴, 121.9 x 91.4 cm


2017년 여름, 출국을 앞두고, 괜스레 석사 과정 커리큘럼을 노트북 화면이 아닌 종이로 인쇄해서 찬찬히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미국 미술 석사 과정은 2년 과정이고, 이 과정을 다 이수하면 M.F.A (Master of Fine Arts) 학위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와이 주립대학교는 미술 석사가 3년 과정이었다. '3년 동안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 걸까?' 란 궁금증이 커져서 다시 자세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어쩌면 3년 과정이란 사실을 아직까지 믿기 힘들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분명히 원서 낼 때 학교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며 읽었던 것 같은데, 모든 말들이, 그리고 모든 단어들이 다 새로웠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내 머릿속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뿔...... 사......! 


 3학년 때 석사 논문을 써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1학년 1학기 때부터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 중에 글쓰기가 있고, 다른 박사과정처럼 Entrance Exam 성격을 띠고 있는 Graduate Examination도 있었다. 줄여서 GE라고 하고, 석사 1학년 2학기 때 친다. 이 시험을 통과 못하면 남은 학위 코스를 밟을 수 없다. 3년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글을 써야 한다니...... 글을......! 글쓰기의 재미도 모르고, 취미도 없던 내가 써 본 글이란 과제와 논술 시험 정도의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대학교에서도 필수 글쓰기 교양 수업이 있긴 했지만, 나는 주로 실기 수업을 많이 들어야 했기 때문에, 다른 학과 학생들에 비해서 글 쓰는 능력은 좋지 않았다. 국어로도 글을 못쓰는데, 영어로 논문을 쓰라니. 마치 사칙연산만 할 줄 아는 사람에게 미적분 문제를 주며, 이것을 풀지 못하면 집에 못 간다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글쓰기를 하냐고......' 하늘이 노래지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갔다.


본격적인 '글쓰기와 친해지기 바라~' 여정이 시작되었다.  

막상 닥쳐오니, 하루하루 글쓰기 서바이벌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날 발견했다. 어렵게 시작한 공부, 글쓰기가 어렵다고 중도 하차를 할 순 없지 않은가. 개인 스튜디오 작업 시간도 채워야 했고, 다른 과목들의 숙제 및 과제들도 하면서 해야 했기 때문에, 하루가 48시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았다. 보통 외국에서 온 학생 혹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이 글쓰기를 힘들어하거나 버벅거리면, 미국에서는 영어 공부를 더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그건 알지만, 무작정 단어를 외운다고 해서 글쓰기가 좋아지진 않지 않는가. 하지만, 나의 지도 교수님들께서는 전혀 다른 해결책을 주셨다. 하와이 미대는 교수님 세 분이 한 대학원생의 지도 교수님으로 계신다. 


나의 지도 교수님들, 특히 글쓰기를 정말 잘하시는 한 교수님께서는,

'글 자체를 별로 안 써 봤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글쓰기도 그림 그리는 기술처럼 하나의 기술이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된다. 영어로 잘 안 써지면 일단 '나'의 모국어로도 글의 흐름이 논리에 맞는지 확인해봐라.'라고 하시며 나의 글쓰기를 인도해주셨다. 특히 모국어로도 글의 흐름이 논리에 맞는지 확인해 보는 작업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영어로 막히는 곳은 모국어로 바꿨을 때도 '똑. 같. 이' 막혀있었다. 혹시 외국어로 글을 쓰고 있는데 막힌다면, 이 방법을 한번 사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현대 미술의 경우 작가의 철학이나 미술적 소회는 작품으로 표현하여,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 글은 관객분들이 나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깨닫게 되기까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년이 걸렸다. 교수님들은 미리 다 알고 3년 과정으로 커리큘럼을 만드셨던 것일까.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글쓰기를 안 하면 그나마 알게 된 글쓰기의 묘미를 모르는 '無'의 상태로 돌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그림을 글이란 도구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누고 싶었다. 여전히 나의 글은 날 것이고 글쓰기 기술이 부족하다. 언젠가 나도 담백하게 나의 그림을 잘 설명하는 그날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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