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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도 타듯

허리케인에 서핑 한 숟갈

학부 때, 수업에 종종 등장하는 작품이 있었다.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가츠시카 호쿠사이, 26x38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바로,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란 우키요에 작품이었다. 무게감과 깊이가 있는 파란색을 가진 힘찬 파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험을 치기 위한 미술사 공부를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우키요에는 일본 에도 시대에 유행한 풍속화이다. 풍속화가 목판화로 제작이 되었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할 수가 있었다. 그 결과, 대중성이 있었고, 나중에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끼친 미술의 한 장르이다. 


하와이 주립 대학교가 [2017 International Mokuhanga Conference]가 열리는 장소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많은 세미나들과 워크샵들, 그리고 전시가 열렸다. Mokuhanga는 목판화를 의미하는 일본어이다.  일본 목판화는 제작방법이 단순하면서도 손이 많이 간다. 우선 질 좋은 나무판이 많이 준비가 되어야 한다. 색깔 하나하나, 선 하나하나 다 각각의 목판에 새겨서 색을 입히고 한 장의 종이에 찍어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종이에 찍어낼 때에는 바렌 (Baren)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바렌은 종이를 나무판에 눌러주는 역할을 하는데, 겉 표면이 생각보다 많이 거칠어서 신기했었다. 대나무 잎 같은 식물의 잎으로 쌓여 있거나, 내 눈엔 새끼줄을 꼬아서 돌돌 말아둔 것도 있었다. 요즘엔 플라스틱으로 간편하게 나온 것도 있지만, 학회에 참석했던 분들 중에서 자신의 바렌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작가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단계를 거치면서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어떤 생각으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파도를 그렸을까 궁금해졌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작가에게  파도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었을까?'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나도 나만의 파도를 그리고 싶어졌다. 과연 나의 파도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그 의미가 다 다를 것 같았다. 

파도 (Wave), 2019, Acrylic on Canvas, 91.4 x 91.4 cm

하와이는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낙원이다. 겨울에는 굵직한 서핑대회가 열리고, 여기저기 서핑 강습들이 많다. 혹시 하와이 가서 서핑을 처음 배우고 싶다면, 잔잔한 파도가 있는 와이키키를 추천한다. 파도가 꽤 치지만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고, 물 높이도 적당히 높아서 초보분들에게 안성맞춤인 곳 중 하나이다. 나와 같은 서핑 초보자들은 허리케인 (이라 쓰고 한국으로 치면 태풍)이 오고 있으면 빨리 허리케인 대비를 하고, 집에서 있을 텐데, 높은 파도를 즐길 수 있는 서퍼들은 주저 없이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로 가서 파도를 즐긴다. 무서울 법도 한데, 파도 높이나 세기가 정말 재밌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며 '아차' 싶었다. 높은 파도는 인생에서는 역경과 고난이지만, 그것을 즐기는 자세가 바로 서핑인 것이다. 고난과 역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즐기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힘들다고 그저 바라만 보거나 주저앉아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선택은 자유지만, 그 결과는 정 반대일 수 있다. 내가 담고 싶었던 첫 파도는 이 긍정적이고 따뜻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하와이 파도였다. 두고두고 보면서 이때 깨달은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대학원 졸업 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고 녹록지 않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머리로는 알지만, 아등바등 헤엄쳐 보지만 제자리이고, 자주 헤엄치다 지쳐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반복하는,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졸업만 하면 일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겠지' 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나의 무의식에 있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마음으로 나의 파도를 그렸는지 다시 생각해본다. 서핑을 배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첫 서핑 시간에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바로 팔의 힘이다. 서핑보드에 누워 팔로 노젓기만 열심히 하다 보면 벌써 1시간이 지나있다. 학교는 생존에 필요한 팔 노젓기를 가르쳐준 것인데, 나는 서핑을 잘 탄다고 졸업 때 아주 단단히 착각했던 것이다. 사실 그게 아닌데. 다시 긍정적인 자세로 나의 파도를 잘 넘어가며 살아보려 한다. 아자자! 다시 한번 더 화이팅! 이 글과 그림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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