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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혹은 여름비

비가 오는 날엔

꽃비 (2021), 캔버스에 아크릴, 91.4 x 91.4 cm


Aloha,


5월 말 6월 초. 봄과 여름의 그 중간.


누군가는 늦 봄이라고 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초 여름이라고 부르는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하늘은 화창한 봄 하늘이지만, 햇빛은 유난히 더 따가워진 것 같고 싱그러운 바람은 여름의 습도를 잔뜩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계절에 비가 오면 엄청 꿉꿉하고 짜증 지수가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한국의 5월 말 6월 초의 비 오는 날이 어쩌면 하와이의, 아니, 마노아의 평범한 날씨입니다. 호놀룰루의 관광지들은 지상낙원처럼 해가 완벽하고 아름답게 쨍쨍한 날들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하와이대학교가 있는 마노아 지역은 회색빛 구름이 자주 학교 위에 두둥실 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곰돌이 푸에 나오는 이요르(Eeyore)가 마노아 지역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도 펼쳐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먹구름이 자주 학교 위에 떠 있진 않을 테니까요.


하와이 생활 초창기 때는 높은 습도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엄청 꿉꿉하고 선풍기를 틀어봐도 빗 속에서 야외취침을 하듯 축축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잘 때는 축축하다 못해 마노아 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 덕분에 너무 추워서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담요들을 껴 앉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느 누가 하와이 날씨가 예술이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와이 풍문으로 물이 귀한 섬에서는 마노아 지역이 하와이 사람들이 신성하게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도 물이 많아 땅값이 높은 곳 중 하나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름 비가 오는 날이 나에겐 짜증 지수가 올라오는 날이지만 다른 이들이 겐 축복이 내리는 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공부하는 동안 이 날씨에 적응을 해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마노아의 비가 적응이 되니 꿉꿉한 습도 높은 공기는 오히려 더위에 지쳤던 피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할 일을 하다 안개 낀 마노아 산을 바라보니 이곳이 무릉도원의 실사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똑같은 날씨이지만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니 삶이 다채롭게 변하는 게 신기했습니다.

아름다운 와이키키 쪽 하늘과 먹구름 잔뜩 낀 마노아


지금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으니 마노아의 평범한 날로 다시 돌아가 과제를 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피부도 다시 촉촉해지는 것 같고, 숨 쉴 때도 편안하고, 공기 중의 수분들이 포근하게 절 감싸 앉는 느낌이 정말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오랜만의 마노아 날씨를 만나니 참 반갑고 일상에서 지친 마음이 힐링됩니다. 항상 다섯 발자국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의 일상 속에서 이번 한 주는 지금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보려 합니다.


Mahal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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