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내놔라 배내놔라 할 수 있지

2020년 1월 25일

by 알로

올해 목표가 하루에 하나씩 글쓰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떻게든 올라가는 날짜 (설정하는 날짜 말고)를 그날그날 기록하고 싶은데, 뭐 밥 좀 먹었다 하면 자정이 훅 지나있으니 원. 약속 좀 있다 하면 금방 다음날 되어있기 일쑤다. 그래서 제발 아침에 써보자 마음먹었지만 아침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머릿속이 맹탕. 아직 나의 뇌도 훈련이 덜 된 것이다. 그래도 조금 나름? 뿌듯한 게 있다면 아직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 어쩌다 한 번씩 12시가 되기 전 글이라도 올리면 혼자 뿌듯해한다. 암, 잘했어. 역시 나야.


오늘 오랜만에 사촌동생을 만났다. 명절이니까. 명절 아니라도 자주 볼 수 있지만, 또 그게 맘처럼 되진 않는다. 외가 쪽에 유일한 피붙이랄까. 직계 사촌은 내게 그 녀석밖에 없다. 그 녀석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내가 업어키웠기 때문이다. 작년 2월에 전역한 그 녀석은 오랜만에 본 나 (사랑하는 사촌누나)랑 이야기할 거리를 미리 생각이라도 해온 듯


"누나, 나는 아재 감성이야" (내겐 이 말이 나와 굳이 세대를 맞추려는 걸로 들렸다) "왜?" "겨울, 하면 떠오르는 노래에 내 친구들은 겨울왕국이라는데 나는 터보라그랬어. 그건 40대 감성이래" "오, 그래? 나는 겨울 아이(수지)인데?" "누나는 젊네!"


"누나, 여름 하면 떠오르는 노래는 뭐야?"

"(조금 의식해서) 듀스...?"

"여름 안에서? 나는 쿨이야! 이거 봐 누나 나랑 비슷하지?"


그러면서 지니뮤직으로 듣는 90년 갬성 리스트를 보여준다. 코요태, 룰라, 박혜경, 듀스, Ref, 이정현, 젝스키스... 얘야 나도 이 정도까지 매니아는 아닌데. 장난스레 물었다. 김광석의 이등병 편지는 안 듣냐?


"그런 노래 듣는 거 아니야. 내가 병장 만기제대했는데 이제 그런 노래 들을 짬이 아니지"


귀엽다. 짜식.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온 가족이 모여 염하시는 걸 지켜볼 때도 이 애기는 할아버지가 떠났다는 걸 실감하지 못한 것+왜 우리 할아버지가 저기 누워계신지 몰라 무서운 것. 그런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울던 초등학생이었다. 그것도 저학년.


그랬던 애가 이제 군대도 전역하고 알바도 나름 열심히 한다며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더니 대뜸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내 할머니께 드린다. 아, 나보다 낫다, 네가. 기특하고 귀엽다. 정말 잘 컸구나. 그 녀석은 이제 24살이다.

나의 24살 때보다 훨씬 철들고 기특한 스물네 살.


그 녀석과 떡국이랑 갈비찜을 먹는데 할머니는 비쩍 마른 사촌동생이 영 마음에 걸리는지 명태고 고기고 다 갖다 놓으며 제발 먹으라고, 동생은 밥 먹고 와서 배부르다고. 그런 저런 대화가 오간 뒤 동생이 대뜸 근황을 털기 시작했다. 스물네 살 때면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랄까.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 손님들이 자꾸 2차로 와서 배부르다고 1인분만 시키려고 한다. 한 번에 소주 다섯 병 시키면 되지 왜 한 병씩 시켜서 귀찮게 하냐. 가끔 팁을 주는 손님이 있는데 저번엔 1000원을 받아서 벙쩠다. 교도관 시험이랑 경찰관 시험 중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친구들은 소주를 마시는데 자긴 아직 맥주만 먹는다. 두시부터 열 시까지 일하는데 힘들다. 등등


할머니와 다른 친척들은 한 마디씩 거둔다.


손님들이 너무했네. 그냥 2인분시키라고 해.

1000원이라도 팁 주는 게 감사하지 않니.

술꾼들은 원래 술 먹을 때 오늘 몇 병 마셔야지 생각하고 마시진 않잖아.

교도관은 네 성향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은데 다른 거 뭐 좋아하는 거 없니.

소주도 그렇고 술은 안 마시는 게 좋다. 잘했다.

밥은 먹고 하냐, 너무 고생이네.


나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곰장어 먹으러 누가 1차로 가냐. 2차로 가지.

소주를 차갑게 먹어야 제맛이지 그걸 한 번에 시키는 바보가 어딨어.

1000원 땅 파 봐라 나오나.

그냥 칠 수 있는 시험 다 쳐봐라. 하다 보면 네 적성에 맞는 길 찾겠지.

소주도 먹을 줄 알아야지, 인생의 쓴맛이여.

두시부터 열 시까지 일하는데 뭐가 힘들어, 나 때는 말이야...


꾹 삼켰다.

그 녀석은 내 말이라면 찰떡같이 듣는 아이라서 괜한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한두 마디 얹는 것조차 이 친구에게는 꼰대 소리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너무나 확고했기 때문. 사회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 만나면 그렇게 말이 곱게(?) 예쁘게(?) 나가는데 가족이면 그리고 한참 어린 내 새끼 같은 동생이면 말도 험하게 나가고 그냥 막 던지게 된다. 물론 여태껏 동생한테 말을 함부로 해본 적은 없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 자체가 그다지 예쁜 편은 아니다. 친척들과 동생이 주고받는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어떤 말로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 잠시 고민이 되기도 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영상을 만들었다. 안주거리 삼아 친구랑 카페에서 영상을 보여주며 지적질 대환영이라 했더니 그 친구 나름 잰틀하고 아름다운 어휘를 골라 지적질을 해댔다. 병맛 질문이 요즘 대세인데, 왜 병맛 질문을 안 하냐. 호흡이 더 빨라야 하는데, 좀 루즈한 경향이 있다.


그래. 다 맞는 말인 거 안다. 나는 과연 진심으로 지적질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인가. 자문해본다.


8년 전에 아는 오빠가 꼬치집을 냈다. 오픈하기 전 간단하게 요기할 것을 사들고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 오빠, 가게 한 번 훑어보고 아이디어 좀 내봐. 툭 던졌다. 아이디어 좀 내보라고 해서 "오빠 의자가 너무 길어서 오래 앉아있기 불편할 것 같아요" "오빠 가게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좀 어두운 것 같아요" "오빠 환기가 안 될 것 같은데" "오빠.." "오빠 그.." "오빠"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오빠는 내게 그런다.


"원래 차려놓은 밥상에 딴지 거는 건 쉽지. 원래 그런겨. 이게 하나하나 처음부터. 무에서 유를 만들 때는 막막하거든. 근데 다 이유가 있는겨. 딱 모양을 잡아놓은 상태면 원래 허점이 더 잘 보이는겨"


그 오빠는 아마도 그때 내게 서운했던 것 같다. 오빠의 표정을 보며 순간 내가 지나쳤다는 걸 깨닫고 입을 꾹 다물었지만 말이다. 그오빠가 내게서 듣고 싶었던 말은 좀 더 긍정적인 내용이겠지. 그리고 이 정도 한 거 너무 수고한 일이라고, 자랑스럽다고.


그런 것 같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잘못된 점을 찾는 게 목표가 되어버리면 그건 그냥 지적질이자 잔소리. 하지만 말없이 슬그머니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도 많은 거고. 굳이 말이 아니라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질 수 있는 거고. 그 아이가 나의 조언 따위랑 전혀 무관하게 알아서 할머니께 세뱃돈을 쥐어드린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내 사촌동생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뭘까, 고민이 되는 그런 명절인 오늘, 1월 2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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