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누가 엿 먹으래

by 알로

오랫동안 미뤄둔 치과를 다녀왔다. 엿 같이 딱딱한 캐러멜 먹다 이가 나갔다, 고 했지만 그건 원인의 일부일뿐. 충치를 방치해둔 탓에 약해진 치아가 화근이었다. 거의 2년 만에 재방문한 치과였다. 의사 선생님은 내 차트를 보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미묘한 정적과 아작 난 치아 한 덩어리 앞에서 난 한순간에 죄인이 됐다. 이제 믿을 건 눈 앞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이 사람뿐이다. 돈 수백이 날아갑니다, 시작을 알리는 석션 소리와 함께 내게 찾아든 건 통증과 우울감뿐이었다.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임플란트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그렇겠...죠."

"사랑니도 다 뽑아야 되고요."

"... 네"


원래 치아가 있던 자리가 비면 그 빈 공간을 나머지 치아들은 용케 알아차리고 이동하기 시작한단다. 비어있던 자리를 채우려고 아래쪽 어금니가 슬금슬금 기어올라왔다. 임플란트를 채워 넣기엔 공간을 비좁아졌다고 의사 선생님은 비교적 덤덤하게 말해왔다.


"큰 공사가 되겠는데요?"

"네..."


할 수 있는 말이 달리 없다. 잘못 관리했으니 벌을 받는 것도 마땅하다. 비용과 통증, 할애하는 시간까지 오롯이 나의 몫인 것도 맞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서럽다. 비용도 통증도 할애할 시간도 버겁기 때문이다. 치과는 무조건 자주, 빨리 가는 게 상책이란 말을 치과 진료대에 누워서야 절감한다. 치아보험을 들어놨다 한들 카드결제 문자엔 찍힌 숫자들이 야속할 건 틀림없다.


마취가 풀리면서 통증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병원에서 준 약을 복용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거즈를 물고 있어 물도 삼킬 수가 없다. 핏물이 입안에 잔뜩 고여있는데 뱉으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받은 터라 애써 삼켰다. 피 비린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잠이나 자자 싶어 숙직실 침대에 잠깐 누웠다. 때마침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괜찮니? 아팠겠다. 어느 쪽 이야? 왼쪽? 그래. 좀 쉬어라. 무기력한 목소리로 받으니 '우는 거 아니지?' 물어보던 아빠. 무슨 이런 걸로 울어, 하고 전화를 끊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픈 것도 짜증 나고 후회도 밀려오고. 이 우울함은 비단 치아 때문만은 아닐 거다. 어금니의 빈자리는 손톱만 한데 괜히 요 며칠 속상했던 일들이 하나둘 생각나면서 손톱만 했던 빈자리를 산더미만큼 거대하게 만들어놓았다. 건강이 주는 의미란 늘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좋은 점이 하나 있다. 한쪽으로 씹어야 하고, 뜨겁거나 맵고 짠 음식을 먹으면 안 되다 보니 음식을 가리게 된다. 소화가 잘 되는 좋은 음식을 골라 먹게 된다. 먹는 속도도 느려졌다.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허구언날 맛없다고 투덜대던 구내식당 밥이 거짓말처럼 맛있게 느껴진다. 현미의 식감이란 이런 것이었구나. 맨날 나오던 이 반찬이 은근히 맛있는 거였네? 오래간만에 아주 맛있는 식사를 마친 기분이다.


마취가 덜 풀려 입모양은 일그러지고, 입가에 핏자국이 살짝 묻었다. 감각이 없어 눈치채지도 못했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회사 선배가 덕담을 건넨다. "연초부터 엄청난 액땜 하나 보네. 힘내라." 내 잘못으로 받는 벌도 액땜으로 쳐줄까. 그렇다면 좀 기대해볼까. 호사다마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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