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화장실에서 혼밥 했던 아이

by 알로

대학에 갓 입학하고 며칠 지난 어느 날.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교정은 어수선했습니다. 저마다 안면을 트거나 친해지기 바빴고 저를 비롯한 유학생들은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 채 서성거렸지요. 4월의 봄날. 통유리에 둘러싸인 라운지 건물은 햇살이 고스란히 내리쬐는 구조였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오롯이 담겨 따스한 온기를 뿜어냈죠. 모두가 재잘재잘 행복해 보이는 분위기 속 우두커니 서 있던 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점심시간인 것 같았어요. 저마다 챙겨 온 도시락을 꺼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몇몇은 무리 지어 건물 밖으로 나갑니다. 밥을 어디서 사야 하는지 어디로 가면 먹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학교 뒷문을 걸어 나와 오는 길에 보았던 작은 가게에 들어갔죠. 얇은 용기에 담긴 주먹밥 두어 개를 골라 녹차 하나 사 들고 라운지로 돌아왔는데, 앉을 곳이 없더군요.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짝지어 무리를 이룬 채 자리를 잡았고, 개중엔 꽤 친해진 듯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는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저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듯 홀로 주먹밥을 꺼내 들 자신이 없었어요. 이대로 집에 가버리고 싶다, 소리 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래서 고른 게 화장실이었습니다. 새 건물이라 깨끗해 보이기도 하고 음악이 흐르는 데다 좋은 향기까지 났더랬죠. 열린 칸 아무 데나 들어가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아 비닐봉지를 풀었습니다. 주먹밥 한 개 먹고 녹차 한 모금.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눈물을 머금거나 목이 콱 막히는 감성적인 장면은 없었습니다. 그냥 먹을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도 먹게 되는구나 입안에 오물오물, 오랫동안 씹고 삼키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건 말이지요. 다행히 친구가 생기기도 했지만 아마도 화장실에서 다시는 밥을 먹지 않으리라 무의식 속 세포들이 단합이라도 한 듯 점심시간마다 뻔뻔한 생존력이 되살아났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15년 전의 일입니다.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혼행족(혼자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요즘입니다. 온라인에 한창 떠돌던 <혼자 어디까지 해봤니?>라는 체크리스트도 이젠 한물간 모양입니다. 밥 먹기, 고기 구워 먹기, 영화 보기, 여행 가기, 쇼핑하기, 노래방 가기. 경험해본 게 많을수록 '혼자 놀기의 달인'이라 자부해도 된다는 지표였지요.


그럼에도 아직 혼자 있는 사람을 쉽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혼자에겐 '왜' 혼자냐는 질문이 따라붙곤 하지요. 어쩌다 한 명이 빠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조용한 취조가 시작됩니다. 같이 안 먹는대? 왜? 혼자 먹는대? 어디 갔대? 소극적, 사회성 부족, 마이웨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일상에서도 '1인' '혼자' 란 조금 낯선 이야기지요. 붐비는 시간대에 혼자 식당 문 두들기기란 여전히 눈치가 보입니다.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한 요리도 많고요. 자리도 없어 보이는데 혼자 앉으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세 명 가운데 한 명 꼴로 혼자 사는 시대입니다. 20년 후엔 35%를 넘어설 거라고도 하고요.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는 이 모든 걸 혼자 하는 게 이제는 일상을 넘어 하나의 취향이 된 세상입니다. 오랫동안 묵혀온 작은 기억을 꺼낼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한몫한 듯싶습니다. 코로나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죠. 늘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우리네 삶에 큼지막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눈치가 뭐길래?


여기서 더 나아가 어디에 있든 눈치라는 이름에 위축되지 말자,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보고 싶을 때 보고 안 보고 싶을 때 안 봐도 되는. 더 이상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가 아니길. 생존력, 생필품, 생명줄과 같은 절실함보다 취향, 배려, 당당함을 뿜어내는 긍정적인 이름이 되길.


15년 전 저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옆 칸에 들릴까 노심초사 도시락 봉투 바스락 소리에도 잔뜩 움츠러들었던 열아홉의 저에게. 이럴 수도 있는 거지 애써 담담한 척 눈칫밥 오물거리던 우리에게. 숱한 날 마음 졸이고 주변을 맴돌며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을 동세대에게. '그때 너는 유행의 선두주자였던 거라고. 조금 앞서갔던 것뿐이라고. 이제 그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눈치 그까짓 거 가지고 놀 수 있는 사람으로 살자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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