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이 당연한 나라
'필담으로 안내해드릴 테니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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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 버스 안 곳곳에 붙어있던 안내문이 눈에 띈다. 귀가 들리지 않는 분을 위해서? 설마. 익숙하지 않은 문구다. 코로나 때문에 구두로 말하는 걸 꺼려해서 그런 건가? 내 생각의 범주는 딱 그 선까지 미치는 수준이었던 거다. 사실 이런 안내문 한국의 공공장소에서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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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니 들리지 않는 사람에게 보내는 문구란다. 청각장애라는 단어를 별도로 기재하지 않은 것 또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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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나처럼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아도 곧바로 알 수 있는 메시지다. 저 종이 한 장이 누군가에겐 유일한 소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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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 아래 앉아 꾸벅꾸벅 졸던 어르신들은 공항 가까이쯤 갔을 때 번쩍 깨더니 화들짝 놀란다. 내려야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운전석까지 제법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는데 기사분이 웃으며 손짓한다. "아직이에요. 앉아 계세요" 부부는 멋쩍게 웃으며 앞자리에 걸터앉았다. "내리는 줄 알았지 뭐예요 당신도 그랬죠?" 멋쩍은 듯 대화하는 부부 뒤에서 듣고 있던 여성분이 맞장구친다. "저도 그런 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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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상황이었지만 급정거로 넘어지시는 바람에 반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어야 했던 내 할머니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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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씨는 한참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입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깐 실례하겠다며 자리를 비운 그가 가져온 건 건전지였다. 귀에 꽂혀있는지도 몰랐던 보청기를 꺼내들더니 "나이 먹은 사람은 피곤하죠?" 껄껄 웃는다. 훨씬 편해졌다는 듯 환한 미소로 한 시간 가까이 인터뷰에 응했다. 히코산마루가 침몰한 지점을 보여주겠다며 운전대를 잡았던 그는 우리 나이로 아흔한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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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과 서투름과 불편함에 조금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순간들. 거기엔 모두의 미소가 있었다. 나라한테 바라지도 않는다. 나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