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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Mar 03. 2020

진짜 다이어트가 필요한 건

몸무게가 아니야

오늘은 좀 귀가가 늦었네 싶었는데 글 쓰려고 노트북을 여니까 10시 45분이다. 기분 살짝 업된다. 12시에 자는 걸 목표로 하면 그래도 한 시간 넘게 남았으니 시간을 벌어놓은 기분이다. 근데 이상하다, 아까 세수할 때 분명 11시였는데. 방 시계를 다시 보니 11시 45분이다. 아쒸 노트북 또 고장 났네. 한순간에 허무함이 밀려온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할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고 끝내야 할 시간은 다가올 텐데, 시계를 보니 두시 반이다. 아직 세 시간이나 남았다. 오예 나 오늘 일 좀 빨리했네? 뿌듯하게 기지개 켜며 손목시계를 보니 세시 반이다. 한 시간을 잃어버렸다. 금세 침울해진다.  


요즘 자주 있는 일이다. 맛이 간 노트북 시계를 두고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들쑥날쑥 거 린다. 코로나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 침체된 분위기 속 별 거 아닌 일에 웃게 되기도 하면서 하나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불필요한 외출도 못하고 밀폐된 사무실 안에서 꾸역꾸역 마스크를 써야 하고 온통 확진자 숫자만 눈에 보이니 그저 파란 하늘에 날씨라도 좋으면 마냥 헤벌레 웃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기분이라는 게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감정은 컨트롤할 수 있다 쳐도 기분을 컨트롤하는 건 좀 힘들다. 날씨가 좋아 들뜬 기분을 만끽하면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감정을 표현하진 않으니까. (무슨 논리?)


나는 감정 컨트롤에 얼마나 능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20대 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조금 생긴 변화가 있다면 대충 어떤 상황에 내 감정이 예민해지는지, 어떤 생각을 하면 감정이 업되는지를 파악해내는 중이다. 그중 작지 않은 역할을 해내는 건 내가 듣는 음악 리스트다. 그래서 우울한 일이 생기면 (가령 면접에서 떨어졌다던가, 애써 만든 방송을 못 내보낸다던가,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졌다던가) 자주 듣는 음악 리스트에서 슬픈 노래를 죄다 지워버린다. 반대로 들뜰 수밖에 없는 좋은 일이 생기면 (그나마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심호흡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들떠있다가 일을 그르친 경험이 몇 번 있어서겠다. 소문난 행복은 쉽게 깨진다는 미신을 믿어서 일수도 있겠다. 그런 오랜 습관들이 몸에 배다 보니 아주 조금은 덜 울고 더 웃게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노트북의 잘못된 시계를 보며 오예 나이쓰!, 를 외치는 나다. 참 단순하다. 이렇게도 쉽게 바뀔 수 있는 게 기분이라면 내 기분 따위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건데 뭐하러 붙잡고 사나, 그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구나, 싶다. 살아오며 내 기분이 이끄는 대로 내렸던 선택이 얼마나 많았던가, 싶기도 하고.


불필요한 자리들과 불필요한 소비, 길에서 버리는 시간들이 사라졌다. 가끔은 내 삶에도 이런 다이어트가 필요했다. 날이 풀리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땐 완연한 봄이겠지. 그 순간을 좀 더 아름답게 만끽하고 싶으니, 좀만 더 참아보겠다. 나의 기분들도 잘 다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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