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벌써 3월 중순이네
1. 회식자리가 끝나갈 무렵 인턴이 매우 조심스럽게 그에게 질문했다.
"그때 방송에서 휴머니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유가 있으셨나요?"
그가 답했다.
"휴머니즘... 이 대단한 거니? 그건 기본이야.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한 거지."
이런 사람이 존재하는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말과 실천 그 사이, 간격이 0.1푼어치도 없는 그의 인생이란. 말보단 행동이고, 말이 없어도 행동은 있어야 된다.
2. "어렸을 적 부모님이 날 앉혀놓고 맨날 6.25 전쟁 이야기만 하셨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부모님들한테는 불과 10년 전 이야기였던 거지. 너네도 생각해봐라. 10년 전에 너네 뭐했니? 2010년, 2011년 기억나지? 엊그제 같지 않니? 그들한테도 그랬던 거야."
10년 전의 내가 엊그제 같으면 10년 후의 나도 금방이겠지.
3. 마스크를 쓰다 보니 인사를 받으면 누군지 알아보기까지 좀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내가 인사를 했을 때 바로 못 알아보기도 할 거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이 됐던 사람과 스쳐 지나갈 땐 마스크가 좋은 방패가 되어주기도 했다. 매우 좀스러운 생각이었다. 인사는 마스크를 내려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게 맞다.
4. 나를 두고 "넌 참 사람을 안 재고 순수하게 만난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건 날 정말 몰라서 하는 얘기다. 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이 사람을 가늠한다. 재는 기준이 다를 뿐이다. 나랑 대화가 가능한 사람인지, 언제 어디서든 당당한 사람인지, 책임감이 있는 사람인지. 남녀 불문하고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종하지 않는다. 남자라면 특히 더.
5. 새로 들어온 인턴 친구가 굉장히 적극적이다. 항상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한다. 늘 한결같은 톤이다. 아직 들어온 지 며칠 안 돼서 이 분위기가, 우리가, 거북하고 불편할 수 있을 텐데 질문을 자주 던지고 의견 표시를 확실하게 해 준다. 하루하루 볼수록 그 아이가 편해지고 점점 기특해진다. 이것은 젊음인가, 성격인가, 초심인가.
6. 인스타를 하다 보면 종종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좋아요를 받는데, 주기적으로 찾아와 좋아요를 누르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별 신경 안 썼는데, 사진 서너 개에 좋아요 누르고 며칠 뒤에 잊을만하면 또 나타나 좋아요 누르고 사라진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길래 왜 굳이 저럴까 생각해봤다. 여자다. 유명한 사람이다. 더 이해가 안 갔다. 그러다 문득 이건 '당신이 먼저 팔로우하라'는 그녀 나름의 자존심이란 걸 알았다. 나보다 어린 친구던데, 귀여워서 선팔해드렸더니 1분도 안 돼서 맞팔이 돌아왔다. 관심을 끄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그다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나중에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
7.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꽉 차있는 스케줄표를 보며 뿌듯해했었다. 그래, 연말이면 이 정도 약속은 잡혀있어야지. 몸은 피곤했지만,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건 나쁘지 않다. 모든 일정을 소화하니 몸보다 멘탈이 아작 났다. 1월부터 약속을 대폭 줄이고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다. 요즘은 코로나 덕분에 반강제적 외출금지인데, 빈 일정표를 보고 있으니 뿌듯해진다. 자유롭다. 다른 그 어떤 것도 하기 싫은데 한적한 평일에 대휴나 쓰고 부암동 나들이 가고 싶다. 친한 언니가 석파정 투어 해준다 그랬는데, 석파정은 정말 좋아하는 사람과 가려고 평생을 아껴온 장소다. 나의 도반은 언니였어?
8. 휴가철이라 일주일에 방송이 두 번씩 있다 보니 7일이 훅훅 지나간다. 아까 방송했는데 왜 지금 원고를 또 쓰고 있지? 어? 방금 나갔는데 나 왜 또 아이템 찾고 있지? 싶지만 그래도 좋다. 연일 코로나 아이템.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문제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소소하지만 중요한. 작지만 대수인. 정말 재미있긴 한데, 난 언제쯤 밀착을 떠날 수 있을까. 이제 슬슬 탐사가 하고 싶다.
9. 사실 요즘 사무실에 있을 때 기분이 너무 좋다. 옆자리 앞자리 대각선 자리 모든 자리에 좋은 사람들만 앉아있다는 걸 자주 느낀다. 월급 박봉인데, 사람은 너무 좋은 회사라며 투덜댔을 때 누군가 그랬다. 이야, 좋겠다. 사람 좋은 게 최고야. 근데 나도 안다. 그 말이 맞다.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이 회사는 아직까진 나름 나쁘지 않다.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이 정도면 대한민국 TOP 10 안에는 들 걸?
10. 하루에 한 편씩 글쓰기 시작한 지 오늘로 71일째다. 100일 다짐 세 번 더 하면 올해도 다 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100일을 다 채우기 전에 또 하나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시작은 내일 아침부터다. 3월 11일은 내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니까.
* 사람들이 다 쓴 마스크를 자꾸 길거리에 두고 간다. 까먹는 거 맞지? 버리는 거 아니지? 환경미화원, 공공근로자의 몫이다. 그들은 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인데, 되려 그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마스크는 재활용쓰레기가 아닌 소각장으로 가는 종량제봉투에 담아야 한다. 리멤버. 그림은 같이 일한 그녀를 위한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