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딴엔 꽤 큰 변화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머리 자른 걸 못 알아본다. 시초는 엄마였다. 머리 자르고 집에 돌아왔는데 현관문을 열어주던 엄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머리 잘랐어? 라는 말을 기대했으나 돌아온 말은 일찍 좀 오시죠? 였다. 아침저녁으로 식탁에 마주 앉아 식사를 해온 관계다. 엄마가 모른다는 건 살짝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눈썰미란 관심과 애정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는다.
연인이었다면 왕삐짐감이다. 막상 엄마가 몰라보니 타인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졌다. 20cm는 결코 짧은 길이가 아닌데 어떻게 모르지? 서운한 감정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나 역시 눈썰미가 없는 편이라 엄마나 아버지가 미용실에 다녀와 하루가 지나도 모를 때가 종종 있다. 어쩌다 두 분의 대화를 주워듣고 머리 자르셨냐 여쭤보면 "응, 저번 주에."는 대답도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어느 날엔 출근하니 동료가 먼저 와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인사를 나누고 앉았다. 뒤따라 출근한 인턴들이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동료를 보고 외친다.
"우와, 선배 머리 자르셨네요?"
"잘 어울리십니다!"
아... 그제야 알았다.
"제가 눈썰미가 없네요. 그러고 보니 자르셨네. 잘 어울리세요!" 뒤늦게 전한 안부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친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작가님은 아실 줄 알았지만요. 뭐, 괜찮습니다."
그날 이후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그의 헤어스타일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 몇 주 전, 오늘은 확실하게 뭔가 바뀌었다, 싶었다. "머리 자르셨죠!" 확신했다.
"헛, 아닙니다. 파마는 했습니다." 그가 또 멋쩍게 웃었다. 이번엔 반쯤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 헤어 스타일이라는 게 유심히 봐도 모르는 사람에겐 안 보이는 거다. 그거 모른다고 상대방에게 관심 없는 건 아니다. 관심 많아도 모를 수 있는 거다. 그냥 그런 거다. 엄마가 모를 정도면 말 다했다. 그래도 마주치는 사람 가운데 몇 명이나 알아봐줄까 궁금해졌다. 사무실에서 마주친 인턴 친구에게 캐러멜을 건넸다. 어디서 난 거냐 묻길래 "어제 미용실 갔는데 디자이너 선생님이 주셨어." 인턴은 곁눈질로 힐끔 내 머리를 올려다보더니 당황한 눈치다. 눈동자가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 미용실에 가셨군요. 그런데 뭐 하셨습니까?"
몇 분 후 출근한 또 다른 동료가 날 빤히 쳐다본다. 그녀는 눈썰미의 여왕이다. 똑같이 방송을 모니터 하다가도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다거나 살이 빠졌다거나 옷차림, 표정과 같은 세세한 것들을 곧잘 캐치해내는 그녀다. 내겐 없는 능력의 소유자로 디테일에 관해선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그녀다. 기대를 걸어본다. 눈이 마주치니 그녀는 방긋 웃는다. "어? 뭔가 바뀐 것 같은데?" 그리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긴다. 별다른 말이 없다. 왜 몰라. 머리 잘랐구나. 이 한 마디가 나올 때쯤 됐는데. 계속 쳐다봤다. 다시 날 보더니 알아차렸다는 듯 말문을 뗐다.
"왜. 배고파? 뭐 먹으러 갈까?"
인정하기로 했다. 2년 동안 내 허리춤에 동거하던 섬유성 단백질 20cm는 오롯이 나의 기분 전환을 위해 장렬히 전사했고 아무도 그 존재 따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걸 유일하게 기억할 사람이 있다. 어제 찾았던 미용실이 아닌, 원래 자주 가던 미용실 점장님이다. 그곳의 예약이 차는 바람에 어젠 다른 미용실을 찾았지만, 그분이라면 기억을 할 것이다. 어느덧 5년째 단골인 그 미용실 원장님은 내 머리카락 변천사를 줄줄이 꿰뚫고 있다. 앞머리가 자꾸 눈을 찔러 회사 앞 미용실에서 앞머리를 살짝 다듬었을 때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뿌리염색을 하러 두 달만에 찾아가면 저번보다 늦게 오셨네요, 한다. 그녀에겐 내 머리카락이 전문분야다. 나라는 사람을 헤어스타일로 기억해내는 능력. 눈썰미란 전문분야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엑스레이 차트에 찍힌 어금니 치료흔적을 보고 "아, 오랜만에 오셨네." 기억해내는 회사 앞 치과의사처럼. 투샷 말고 원샷으로 주세요 하면 '오늘은 안 졸리신가봐요?' 아는 척 해주는 커피숍 사장님처럼.
많은 여성들이 아주 조그만 변화를 모르고 지나치는 남자 친구에게 서운해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다. 남자 친구의 전문분야는 나이길 바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은 알아주겠지, 라는 기대. 눈썰미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장 눈길을 줄 거라 믿는 대상은 당신이니까. 그래서일까 머리 자른 걸 못 알아차리는 딸에겐 관대한 우리 부모님도 서로에게만큼은 엄격하다. 못알아차릴 경우? 대가도 치러야 한다.
비단 잘려나간 머리카락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누군가 나의 변화를 알아차려준다는 건 생각보다 뿌듯한 일이었다. 그만큼 나의 시선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살아야겠다는 것.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서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