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기 한국이었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는 순간

by 알로

작은 버릇이 있다. 카페나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 바닥이 흔들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흔들림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곤 안심한다. 아, 여기 한국이지. 일본에서 오래 살다 보니 생긴 버릇이다.


일본에선 크고 작은 지진이 늘 일어난다. 진앙지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일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흔들림은 감지된다. 미세하지만 사람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떨림이다. 묵직한 차량이 건물 옆을 지나가거나 인근 공군기지에서 비행 연습을 할 때도 진동은 느껴진다. 허나 지진의 그것과는 다르다. 평소랑 다른 진동이 느껴지면 천장에 달린 형광등을 쳐다봤다. 등에 달린 가늘게 늘어진 실손잡이가 대롱대롱 흔들리면 책상에 떠놓은 물병을 확인했다. 진동은 바르르 떨리지만 지진은 찰랑거렸다. 그때부턴 손에 식은땀이 났다. 찰랑거림이 심해지면 지진에 대비할 태세를 갖췄다. 책상 앞에 꽂아뒀던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고 세워둔 물건이 하나둘 떨어진 경험은 결코 적지 않다. 크고 작은 지진이 많은 나라니까.


9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몸에 배어있다 보니 한국에 돌아온 지 또다시 9년을 향해가는 요즘도 좀처럼 습관은 사라지지 않는다. 종종 일본으로 출장갈 때마다 비행기 안에서 밤늦게 돌아가는 숙소에서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오늘 밤은 제발 지진이 일어나질 않게 해달라고. 나는 유독 겁이 많은 사람이고 그런 나에게 그간의 지진들은 트라우마로 남았던 거다. 똑같은 흔들림이지만 한국이라면 의연하게 넘어갈 수 있다. 같은 흔들림이라도 내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몸이 반응하는 불안감에 머리로 안심하는 순간들. 앞으로도 한동안은 흔들림을 느낄 때마다 한국임을 인식하겠지. 그때 느끼는 안도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안도감이 익숙해지면 그땐 이 트라우마도 사라질 거다.


같은 흔들림이라도 누구와 겪어내는지에 따라 다르다. 언제든 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주는 사람과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줄 것 같은 사람이 주는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갓 결혼한 친구가 남편에게 "우린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했고, 언제든 이혼할 수 있어. 긴장하고 살아"라며 따끔한 충고를 건넸다고 한다. 익숙함, 편안함에 사라지는 설렘과 긴장감이 친구에겐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런 충고를 건네고 나니 남편이 달라졌단다. 잔소리는 줄고 가사는 늘었다며 좋아했다. 서로에게 쓰는 말투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했다.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리해서라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상대가 배우자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건넬 일도 없을 거다. 카페에서 책 읽다가 바닥이 흔들리길래 찔끔해서 적어본 글. 벗어나고 싶다, 지진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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