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사재기 없어?

일본에 사는 친구가 물어왔다.

by 알로

우리나라엔 쿠팡이 있잖아.

우리가 누구? 배달의 민족! (이제 우리 꺼 아니지만)

손정의가 이럴 줄 알고 쿠팡에 투자해왔대. 왜?

앞으로 재택과 배달문화는 대세가 될 거니까.

라는 말들을 종종 듣는다.


들은 말을 그대로 친구에게 해주니 "우와 좋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들 배달음식과 택배문화에 얼마나 밀접한 생활을 보내고 있을까. 나의 경우 평소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일은 거의 없다. 얼마 전 지금까지 배달의 민족으로 시켜먹은 음식값이 월급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짤들이 돌아다닐 때 난 1도 공감하지 못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다. 집이 시골이라 배달이 안 된다. 배달의 민족 어플에 유일하게 뜨는 건 중국집 '홍콩반점'이 전부다. 그마저도 오토바이로 15분 거리에 있다. 어쩌다 한 번 시켜먹을 때마다 딱딱해진 탕수육과 불어 터진 짜장면을 섞으며 다신 주문하지 않겠노라 다짐하지만 몇 달 지나면 또 까먹는다. 배달음식이 주는 재미는 메리트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요리나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먹고 나서 정리한 그릇을 대문 앞에 갖다 놓거나 (요즘은 일회용 그릇이 많아졌다) 잘 버리기만 하면 된다.


반면 인터넷 쇼핑은 자주 했었다. 생필품은 전부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킨로션, 향수, 화장품, 샴푸, 린스. 적고 보면 끝이 없을 정도로 나 역시 택배와는 땔래야 뗄 수 없는 1인. 올리브영에서 정가로 팔고 있는 물건도 검색 몇 번 해보면 몇 천 원 싼 인터넷가가 뜨는 세상이니 정보 없으면 호구된다는 말이 슬프지만 맞아떨어진다. 원클릭으로 주문하고 얼굴 갖다 대면 결제되고 받아 든 택배에서 내용물을 쏙 골라 상자와 스티로폼은 버리는, 그런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아침에 엄마랑 식사를 하다 택배 이야기가 나왔다. 모 신문 칼럼에 나온 구절이 뇌리에 박혀 밥상의 화두가 됐던 탓이다.


우리 곁엔 이미 디스토피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구로구 콜센터의 한 상담원은 아침에 출근하기 전, 새벽 일찍 여의도 증권가에 녹즙을 배달했다. 한 20대 청년은 오전 11시부터 슈퍼마켓에서 배송 업무를 한 뒤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음식점에서 일한다. 이 모든 게 확진자 동선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단언하건대 남의 불행 위에 쌓아 올린 소확행은 신기루일 뿐이다.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 '소확행은 없다')


요즘 우리 집 모든 채소는 진도에서 올라온다. 지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장터에서 주문해먹는 식이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자연산 미역부터 오이, 양상추, 상추, 토마토, 깻잎, 장아찌, 고추, 파즙.... 채소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신선함이란 일반 마트에서 파는 그것들과 차원이 다르다. 출발지가 진도다 보니 한 상자당 발생하는 택배비는 5000원이다. 여기서 엄마는 의문을 갖는다. "하나에 5000원이면 우리가 세 상자 시켰으니까 15000원 돼야 하는데, 5000원만 받더라고. 이상하지?"


택배비 15000원이라고 하면 아무도 안 시켜먹을걸, 이라고 대답하려다 정작 어떻게 그 가격이 성립되는지 모르니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말한다. "그럼 택배기사들은 5000원으로 세 상자를 배송해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지인한테 전화해서 택배비 다 내겠다고 말했어." 왜 굳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을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엄마는 자본주의를 역행하는 발상인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말만 늘어놨고 결국 우리의 대화는 정답 없는 미궁 속에서 한참을 겉돌았다. "그럼 택배기사들이 너무 안 됐잖아."라는 엄마의 말에 "일이 고된 만큼 돈을 잘 벌지 않을까? 쿠팡맨 연봉이 4800만 원이란 소리가 있던데?"라는 말을 내놨다. 나, 진짜 뉴스 만들 자격 있나 싶다. 내 인성, 이대로 괜찮은 걸까.


지난해 겨울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건 아마도 인상 깊은 앵커 브리핑을 들은 날이었기 때문일 건데, 크리스마스이브날 '파손 주의'라는 브리핑이었다.


상상 속 하늘에는 루돌프의 썰매를 탄 산타가 구름 위를 누비고 있겠지만 현실 속 우리의 거리에는 사각의 탑차를 타고 상품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택배를 전하는 사람들이 달리고 있습니다.


총알 배송, 로켓 배송, 새벽 배송이 일상화된 이곳은 이름하여 '택배 공화국'입니다.

그러나 흔한 택배 상자 하나가 내 손안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지문이 묻어있는가를 셈해보면 택배란 그리 간단치 않은 묵직함으로 다가옵니다.

가벼운 서류는 물론이고 김치와 생수, 자전거, 가전제품과 가구까지…


요일마다 물량이 다르고 계절마다 배송되는 농산물이 달라지는 그 택배 상자 위에는 '파손 주의'라는 글자가 박혀있는데 한 젊은 택배기사는 그 네 글자를 '사람이 다칠지언정 물건은 다치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읽었습니다.

고된 택배 일을 마친 뒤에 새벽까지 만화를 그려온 그는. 언제부턴가 사람값이 헐해도 너무 헐하여진 세상…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도리어 사람을 누르고 급기야 물건보다 사람값이 헐해지는 현대의 풍경을 작품 속에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는 어떻게든 오늘의 삶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사연 또한 가득 담겨있습니다.

서로가 주고받는 상자 속, 선물이 귀하고 소중한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도 더는 상하지 않기를…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성탄절 전야.

지금도 어디선가 땀 흘리고 있을 청년은 세상을 향해서 기원하듯 말했습니다.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 주의"

오늘의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남의 불행 위에 쌓아 올린 소확행이 신기루라는 말은 하루 종일 마음속에 맴돈다. 전날 자정에 주문해도 새벽 문가에 배달되는 세상. 더 이상 총알배송이란 단어에 흥미를 느끼지 않게 돼버린 세상. 누군가의 노고가 당연해지고 그 당연함 가장 아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과로로 쓰러져 목숨을 잃는 세상. 나는 그 세상 어디쯤에 서있나. 수많은 택배 상자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에, '오늘도 진심을 다하는 00 택배*^^* 문 앞에 뒀습니다'라는 문자에,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고 서있나.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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