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해주는 사람

반성의 아우성

by 알로

여자들이 남자에게 바라는 건 공감이 전부란 말이 있다. 나를 비롯해 주변 여자들도 그 말에 공감하지만 정작 나는 잘 못하는 그것.


"나는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라고"

"그치, 맞아."

"그냥 그랬구나, 서운했구나, 힘들었구나 그 한마디라고"

"맞아 맞아, 그냥 알아주는 게 힘이 되는 건데"


며칠 전 친구 한 명이 그랬다.

"남자 친구랑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일 때문에 파토를 낸 거야. 여자 친구가 서운해서 일이야 나야? 물어봤어. 여기서 남자 친구가 대답해야 할 말이 뭔지 알아?"


대답해야 할 말이 정해져 있다니... 그네들은 참으로 피곤한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동시에 나였다면 안 삐질 텐데 왜 삐질까? 싶었다. (=공감능력 떨어지는 소리)


"글쎄... '당연히 네가 먼저지. 너를 위해서 일을 택하는 거지.' 아니야?"


친구는 '이렇게도 모르다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정답은 '네가 그런 말을 꺼내게 해서 미안해.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속상했어. 내가 앞으론 조심할게' 이거야."


듣고 보니 우문현답이다.


공감을 해줘야 하는 상황은 남친 여친이 아닌 친구사이에도 중요하다. 언젠가부터 공감의 필요성을 의식했고 난 늘 듣는 역할을 자처했다. 섣부른 해결책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할 말을 삼키고 그랬구나, 라는 말로 말문을 튼다. 친구든 애인이든 여타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다. 하지만 단 한 명, 그게 마음처럼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엄마다.


"내가 할머니 댁에 놓으려고 주문했던 소파를 취소했어. 근데 출고가 이미 된 상태라고 배송비를 물라고 하는 거야. (여기서부터 난 입이 근질거렸다) 근데 출고가 돼도 배달이 안 됐고 출고가 됐다는 보장도 없잖아. 근데 배송비가 24000원이라는 거야. 그게 말이 돼?"


"갑자기 전화가 와서 핸드폰을 바꿔준대. (여기서 '엄마...'가 나왔지만 애써 삼켰다) 그래서 엄마도 미심쩍어서 기사를 검색해봤는데 갤럭시 s10이 진짜로 헐값인 거야. 믿을만하다 싶어서 전화를 받고 있었거든. 공짜로 바꿔준다는 거야."


"혹시 이런 뉴스 봤어? (엄마, 그거 가짜 뉴스야) 근데 진짜 맞는 것 같더라고."


하루에 몇 번씩 오가는 이 대화들에 나는 불쑥불쑥 엄마의 말을 끊고 "엄마, 그거는 이런 거야." "엄마, 저번에도 알려준 그거야." "엄마, 원래 택배를 받기 전에 출고하고 집하 처리가 되는 거라서 단순변심이면..." "엄마, 전화 와서 핸드폰 바꿔준다는 건"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엄마의 말을 잘라내며 설교하듯 나대는 나를 엄마는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그랬구나, 엄마는 몰랐지." 대화를 다 끝내고 나서야 안다. 엄마는 모든 이야기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는 걸. 배송비를 물어야 하는 (엄마에겐) 억울한 상황, 느닷없이 전화 와서 핸드폰을 바꿔주겠다는 (엄마에겐) 솔깃했을 상황, 가짜 뉴스라고 수백 번 들어도 (엄마에겐) 눈길이 가는 호기심 가득한 상황.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엄마는 공감할 사람이 필요했다는 걸 머리론 알고 있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나에게 한 번도 "안돼"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새콤달콤을 사달라고 졸랐을 때 빼곤 "네가 하고 싶은 건 해봐. 책임은 네가 지는 거고, 엄마는 네 편이 될 거야"라는 말만 들어온 인생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못해 내가 하고 싶은 걸 도전하지 못했을 때 엄마는 안 된다는 말 대신 이건 어때? 라며 다른 선택지를 들고 나타났었다. 직장생활을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나보단 훨씬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고 귀가 얇을 것 같고 누군가한테 속을 것 같고 상처는 더 많이 받을 것 같은 그런 엄마가 나는 불안했던 건지 무슨 말만 꺼내면 "엄마, 그건 아니야. 엄마, 그건 안돼"라는 말만 늘어놓고 사는 요즘이다.


분명 나랑 똑같은 통신사로 묶어놨는데 어느새 가족할인이 해당되지 않아 이상하게 여겨 들여다봤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신사를 바꿨던 엄마. 남들은 줘도 안 가지는 휴대폰을 돈 주고 사 와서 꼬박꼬박 할부금을 물고 있는 엄마에게 "왜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걸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바꿨냐"는 말 대신 "나한테 말할 겨를도 없이 바꿀 정도로 답답했구나,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딸.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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