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눈치게임이 시작됐다. 책상은 아홉 개나 되는데 방이 작다. 테트리스 쌓듯 꾸역꾸역 배치하다 보니 누군가는 벽을 기대고 앉는데 누군가는 사생활이 노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트북에 보안필름을 붙여놓아도 뒷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한가운데는 모두가 피하는 자리였다.
때마침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뒤늦게 현장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휴가자들은 남은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모든 건 암묵적으로 흘러갔다. 나도 사무실에 있었다. 조용히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몇몇은 너무 구석이라 불편할 것 같다며 우려의 눈길을 보내왔다. 슬그머니 앉아보니 생각보다 편했다. 선심 쓴다는 듯 괜히 큰소리로 말한다. 제가 여기 앉죠 뭐. 조용히 작은 짐부터 옮기기 시작했다. 뒤늦게 팀원 한 명이 현장에서 복귀했다.
"아... 여기가 제 자리인 거죠?" 목소리는 해맑은데 표정은 울상이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런가 봅니다, 속삭였다. 민망해서다. 그녀의 의견을 묻는 순간 다시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그녀는 별다른 대꾸 없이 머그컵과 거치대를 갖다 놓고 자리에 털썩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삼십 분쯤 지났을까 그녀로부터 카톡이 왔다.
그런데 혹시 말이에요. 이 자리 지정석인 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요 이상으로 많은 'ㅋ'는 뼈 있는 진심을 담고 있다.
더 좋은 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랑 이야기해서 옮겨봐요, 또다시 선심 쓰는 척 조언을 건넸다. 나에게 바꾸자고 해온다면 기꺼이 바꾸리라, 조용히 다짐도 해보았다. 그녀는 굳이 책상 하나로 다른 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싶진 않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자리에 잘 적응 해나 가볼게요, 애써 밝은 이모티콘을 보내온다. 왕창. 필요 이상의 많은 이모티콘을 받는다면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생각해볼 만하다. '자고로 사람은 벽을 등지고 앉아야 한다던데...' 그녀는 기어이 한 마디 덧붙여왔다. 이래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것이다.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어도 이 암묵에 동참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공평하게 제비뽑기를 할까. 그녀와 비슷하게 좋지 않은 자리로 배정된 휴가자들에게 물었다. 예상대로 모두가 환호한다. 이번엔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제비뽑기를 해서 지금보다 안 좋은 자리가 나와도 후회하지 않겠는가? 뭐,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엔 좋은 자리를 차지한 이들에게 물었다. "조금 불공평한 것 같은데, 제비뽑기로 다시 결정해볼까요?" 다들 묵묵부답. 조용히 눈길이 오간다. 대답을 유도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그들이 대답하지 않고 질질 끌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이미 좋은 자리에 앉았다. 이대로 조용히 묻히려나. 더 시간을 끌어볼까. 유혹이 올라올 무렵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가진 사람이 나누기 싫어한다는 거 딱 지금의 나네.
결국 제비뽑기를 하게 됐다. 희비가 엇갈렸다. 나의 마음을 자극했던 그녀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부장 자리에 배정되었다. 구석을 등지던 나의 자리는 정말 딱 하루만 나의 것이었다. 제발 걸리지 않길 바랐던 사무실 한가운데 앉게 되었다. 입구를 등지고 앉는 자리에다 모두에게 둘러싸인 자리. 괜찮은 척 웃어보았지만, 몇 시간만 앉아있어도 등이 뻐근해지는 자리였다. 제비뽑기를 내가 제안했으니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와중에 품앗이처럼 배려와 양보가 오갔다. 사무실에 오래 있는 사람이 좋은 자리여야 한다며 선뜻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도 있었고, 원하던 자리에 앉은 이는 쾌재를 불렀다. 제비뽑기에 열렬히 환호했던 휴가자는 똑같은 자리에 또 배정되었다. 아홉 명 가운데 그와 나 단 둘만 울상이었다.
누군가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허리를 180도 꺾어야 했다. 인사를 하려면. 그래 봤자 얼굴이 겨우 보이는 각도라 일어서곤 한다. 하루 반나절 앉아 있어도 뒷목이 당겨온다. 사실 내가 뭘 하는지 봐도 별 상관없는데, 이상하게 누군가 수시로 지나다니거나 인기척이 느껴지면 서서히 뒷목이 당겨왔다. 하지만 무엇하나 장점이 보이지 않는 이 자리가, 앞으로는 나의 자리가 될 것이다. 어떻게든 적응해나가야 한다.
은근슬쩍 좋은 걸 가지려고 했던 나의 마음을 기억한다. 모두가 슬그머니 주거니 받거니 했던 눈치게임도 기억한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과 끝없이 표출되던 마음도 기억한다. 묵묵부답인 채 눈동자를 굴리던 팀원들도 기억한다. 나의 좋은 자리를 기꺼이 내어준 누군가가 있었고, 비록 사무실 자리선정이지만 공론화가 되길 극도로 꺼려하는 마음도 있었다.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단순하고도 간사한 것인지 깨닫는다. 좋은 자리를 선뜻 남에게 내주고도 괜찮다며 소탈하게 웃던 팀원의 마음도 다시 돌아보게 됐다. 다시 찾아와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불편한 마음, 미안한 마음 안고 꿋꿋하게 버티는 것보단 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 편하게 앉는 게 아직까진 나은 것 같다. 그 자리에서 약 11개월을 보냈고, 얼마 전 팀원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모두가 우러러봤던 자리는 나의 몫이 되었다. 이런 것이다,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