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희 씨와 만나고

코로나가 바꾼 일상

by 알로

코로나가 바꾼 일상 중 하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난생처음 했다는 것이었다. 집에 가서 빨리 편한 반바지로 갈아입고 싶다, (엊그제) 깨끗하게 치운 방에서 뒹굴거려야지, 오늘은 무슨 그림 그릴까, 부엌 식탁에 앉아서 넷플릭스 틀어놓고 맛있는 거 꺼내먹어야지, 엄마랑 슈돌 보면서 수다 떨어야지. 보통 사람들에겐 지극히 평범했을 집이 주는 '즐거움'을 난 모르고 살았다. 좋게 말하면 활동적인 거고 안 좋게 말하면 집에 가만히 있을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칼퇴한 날 딱히 일정이 없어도 집에 가긴 억울하고 아쉬웠다. 굳이 광화문을 가고 굳이 교보문고를 들어가고 굳이 거리를 헤매야 직성이 풀리던 나. 코로나 덕에 역마살 성향이 조금은 사라졌달까. 매우 반가운 변화다.


우리 팀은 총 9명이 꾸려가고 있다. 기자와 인턴 그리고 작가. 기자는 넷, 작가는 셋이다보니 매번 다른 기자와 합을 맞춘다. 이번 달은 같은 기자와 세 번이나 하는 영광(?)을 누렸다. 출장을 몇 번 같이 가기도 해서 스스럼 없는 사이. 우리 둘에겐 스누피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던 참이라 "이번 달 아이템은 죄다 스누피로 그려보겠노라" 선언했던 터.


대화를 나눈 게 2월 말이었는데, 이제 4월을 향해 가고 있으니 코로나와 회사 이사로 정신없이 지나간 한 달. 조금은 집순이 같아진 내가 매일 퇴근하고 낙으로 삼았던 건 스누피 삽화를 그리는 일이었다. 죄다 마스크를 쓰고 있다. 훗날 코로나를 어떻게 견뎠나 참고할 만한 그림이 됐다. 아이템도 자연스럽게 코로나 관련이었으니.


길거리에 마스크를 마구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파트 한 바퀴만 돌아도 이만큼이나 나와요, 모아놓은 마스크를 보여주던 경비원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본인이 쓴 마스크인데도 집에서 버리긴 꺼림칙하다며 길거리에 버리는 사람이 꽤 많은 편인가 보다. 고이 접어 쓰레기통 깊숙이 버리면 양반이다. 대충 던져버린다. 이리저리 바람에 휘날린 마스크들은 결국 누군가의 손으로 주워야 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다. 시민들이 생각 없이 버리는 마스크 양이 늘어날수록 길거리 청소노동자들은 감염위험 노출돼있는 셈이다. 매일같이 방역하고 매일같이 쓰레기를 수거해도 뒤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버리고 가는 마스크들. 누가 썼는지 모를 마스크를 주워야 하는 그들에게 구청은 일회용 팔토시를 제공했다. 고무장갑 끼고 설거지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릇 닦다 말고 얼굴이 가려울 때. 물을 끄고 장갑을 벗고 얼굴을 긁고 다시 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번거롭기도 하고 시간이 지체되니까. 청소하다 흐르는 땀을, 흘러내린 안경을 무의식 중에 장갑 낀 손으로 건드리며 이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같은 맥락으로 공중화장실마다 붙어있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화장실은 내 집처럼" 이란 문구들은 우리나라에서 언제쯤 사라질까 싶다. 쓰다 버린 마스크, 사용하고 난 휴지,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는 그래도 내 손으로 끝까지 처리하는 게 맞지 않을까. 말하기도 민망한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두 번째 아이템은 마스크 물량 부족으로 의병단이 생겼다는 훈훈한 이야기. 고령인구가 많은 지자체들은 코로나 19가 확산되면서 마스크 구하러 발품을 팔기도 했단다. 공적 마스크 구매는 남녀노소 불분하고 쉽지 않았던 (물론 지금도)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었지만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 취약계층일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런 그들을 위해 재봉 기술을 가진 사람부터 가정주부, 학생들 너나 할 거 없이 구청 강당에 모여 천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한 중년 여성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최대한 국민으로서 할 의무를 지켜야 될 것 같아요. 첫날 하는데도 딸이 전화가 왔어요. '엄마 거기 노원에서 하는 게 엄마 맞아?' 이렇게."



청정지역 강화도. 현재까지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강화도에선 주말마다 기나긴 행렬이 만들어진다. 강화도에 진입하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발열체크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이유인즉슨 강화도엔 절반 이상이 고령자라는 것, 기저질환이 있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 24시간 운영하려던 계획은 교통체증으로 물거품 됐다. 출퇴근, 통학차량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시간 내 검사가 진행 중이다. 군수가 나설 정도로 지금의 강화도는 외지인 유입에 철저하다. 당분간 제발 오지 말아 달라고 호소한다. 4월 5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보다 강력하게 지키라는 정부지침이 내려온 와중, 지난 주말은 모처럼 파란 하늘의 봄 날씨였다. 하루 종일 집에 있던 나도 도저히 이 좋은 날을 놓치긴 아까워 동네 산책을 몇 시간이고 하다 돌아왔다. 날씨가 풀리니 싱숭생숭하고 마스크 끼고 다니면 괜찮겠지, 라는 심산이다. 모두가. 강화도를 찾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겠다. 조금만 더 참으면 그만큼 빨리 끝날 수도 있다. 답답하고 숨 막혀도 언젠간 끝날 일.


쉬지 않고 일해왔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두 번이나 남았다. 그래도 다음 달은 휴가다. 휴가 직전에 코로나가 종식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단 봄을 만끽할 수 있게 상황이 호전됐으면 간절히 바라는 바. 휴가가서 원없이 그림그리다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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