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낯선 목소리

by 알로

여자 둘이 살면서 하는 말보다 남자 하나가 와서 하는 말이 더 많다. 우리 집 이야기다.


화장실 가 있으면 "OO이 어딨어?" 찾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엌에서 물 끓여 차라도 먹을라 치면 "뭐 마시게? 아빠도 한 잔 줄려?" 물어온다.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방문 열고 빼꼼 "뭐해? 근데 너 방 어둡다. 전구 왜 안 갈았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승민이가 왔다!"며 저쪽 방에 있는 엄마를 부른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람, 아빠다.


장기출장으로 진도에 내려간 게 지난해 6월. 이따금씩 서울과 진도를 오갔지만 한동안 코로나를 이유로 아빠는 (진도의 집에서) 집콕 중이었다. 찍고 있는 영화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바쁘기도 바빴다. 카톡으로만 만나다 실물을 영접하니 새삼스럽게 반갑고 좋다. 돌아온 첫날, 80일 만에 집에서 밥을 먹는다며 낮은 중저음의 울리는 목소리로 식탁을 채우던 아빠.


저 소리가 들리면 차를 마시는 거고 이 시각에 조용하면 졸고 있는 거고 화장실 문 소리가 났으니 씻는 거고. 굳이 물어볼 필요 없이 한 지붕 아래 마음속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엄마랑 나완 달리 아빠는 당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쫄래쫄래 쫒아다니던 어릴 적 나처럼 다 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우리 딸 뭐해, 를 온몸으로 묻는다.


아빠랑 나는 서로 좋아하지만, 서로 오래 같이 못 있는 성향의 두 사람이다.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겠지, 짐작해본다. 엄마가 울고 있으면 달려가 껴안고 엄마 왜 울어? 할 수 있는 용기가 아빠 앞에선 없다. 그건 아빠를 덜 사랑해서도 아니고 아빠가 어려워서도 아니다. 아빠와 나는 서로 안 본 척, 못 본 척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그래 놓고 뒤에 가서 마음 아파하는 것에도 익숙하다. 웃긴 건 그런 성향이 서로에게만 잘 통한다는 거다. 그 '무심한 통함'이 때론 서로를 서운하게 만들었다. 견디다 못해 쓰기 시작한 게 단 둘이 살던 시절에 주고받았던 교환일기였다. 이제 나이가 든 아빠와 조금은 어른이 된 내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게 애교를 내보이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상대의 어색한 언행을 우린 절대 놓치지 않는다.


가령 아빠가 소파에 누워 "아, 다른 집은 딸이 마스크팩 같은 거 해준다던데"라고 엄마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면 집 안에 있는 팩을 싸그리 모아 누워있는 아빠한테 달려간다던가. 전화를 끊기 전에 "나는 아빠 많이 사랑해"라고 매우 어색한 톤으로 되뇌는 내 목소리를 주워들은 아빠가 "나도. 사랑해." 힘주어 대답한다던가. 그런 익숙지 않은 어색함조차 사랑의 표현인 것을, 그게 매우 용기 내어 한 행동이란 걸, 이제 우리는 안다.


별 거 아닌데, 별 거 아닌 걸 나는 그동안 못하고 살았다. 마룻바닥에 엄마와 아빠가 나란히 누워 얼굴에 뭘 잔뜩 바르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센다던가. 어깨가 아프다는 아빠와 등이 쑤신다는 엄마 사이를 오가며 파스를 붙여드린다던가. 거칠어진 아빠의 발바닥에 바셀린을 발라주는 엄마 옆에 앉아 재잘재잘 수다를 떤다던가. 머릿결이 많이 상했다며 천연 레시피 (꿀과 바나나의 조합이라나 뭐라나)를 만들어 아빠의 머리카락에 바르는 엄마. 어디서 이런 걸 또 배워왔냐며 장난스레 핀잔을 주는 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눈 감은 채 웃는 아빠. 뭐 그런 순간들. 하루 중 딱 한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을 지난 30년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간과해왔던가.


그래서 모처럼 지붕이 떠나가라 이 사람(엄마), 저 사람(나)을 쑤시고 다니는 아빠의 목소리가 나는 몹시도 반가운 거다. 예전엔 우리 부모님만큼은 늙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노인이라는 말을 혐오했다. 아빠의 얼굴에 작고 희미한 검버섯이 생겼을 무렵 인정하기 싫었던 난 기미라고 주장했다. 어쩌다 티비를 보고 있는 아빠의 장딴지가 예전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걸 느꼈을 땐 스쿼트랑 런지를 해야 한다며 생떼를 부렸다. 한평생 웨이트와는 거리가 먼 아빠에게.


그런데 세월의 흐름은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인지 어느샌가 나도 부모님에게도 거쳐가는 세월은 거역할 수 없음을 느낀다. 검버섯이라는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해 일기장에 꾹꾹 눌러 적었던 지난날의 나도 이제는 안녕. 그럴 시간에 아빠한테 가서 나랑 같이 팩이나 하자고 옷자락 잡고 늘어지련다. 앞으로 길지 않을 여생은 꼭 그런 시간들로 가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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