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찐자 라는 해시태그를 처음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살찐자 가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찌지 않았던 체질이라서다. 라면, 튀김, 피자, 햄버거보단 토마토, 청경채, 닭가슴살을 좋아한다. 횟집에 나오는 치즈듬뿍 콘버터보다 소라껍데기나 해초를 즐겨먹는다. 치킨? 안 먹는다. 유일하게 후라이드 치킨을 즐겨먹는 건 합정역 근처 '그리운 금강산'이란 노포뿐이다. 사무실에선 뜨거운 차 혹은 옅은 아메리카노만 마신다. 걷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이 모든 성향과 타고난 유전자를 거역하려는 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알코올.
언젠가부터 소주를 마시지 않게 됐다. 취한 느낌이 싫어졌다. 다음날 숙취로 고생하는 것도 내 루틴이 망가지는 것도 싫었다. 대신 맥주를 즐겨마시게 됐다. 맥주는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 않지만 배가 부르니까. 딱 두 잔 정도면 기분 좋게 귀가할 수 있다. 안주빨을 세우는 편도 아니니 그 정도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했던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뭐가 무거워 내려다보니 그동안 어디에 기생했었나 싶은 뱃살 한움큼이 보였다.
화장실을 제때 못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만큼 위와 장이 튼튼했던 나의 신진대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보름 전이었다. 먹은 걸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고 조금만 먹어도 위가 볼록 솟아올랐다. 온종일 납덩이같은 위를 들고 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핸드폰 속 만보기 어플을 열어보니 적게 걸은 날은 500보. 만보기에서 볼 수 일을 거라 상상해본 적 없는 숫자. 집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만보도 천보도 아닌 백보 단위로 기록되고 있었다. 생전 손 대본 적도 없는 위장약과 소화제를 챙겨 먹었다. 그래도 낫지 않아 한의원을 찾았다.
"언제부터 아팠어요?"
"20일 정도 된 것 같아요"
"참나"
언제나 친절하기만 했던 한의사가 면전에 대고 코웃음을 날린다. 그날 찜질과 약침을 맞고 집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낫지 않아 슬슬 걱정이 되던 찰나였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닭가슴살을 챙겨 먹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목표는 5km다. 러닝이 익숙한 몸뚱아리는 아니지만 이미 내 몸은 예전의 그 몸이 아니다. 몇 분 뛰었는데 금세 숨이 찬다. 어딘가에서 본 씁씁 후후-를 열심히 발맞춰 하는데도 버겁다. 페이스를 낮춰 뛰어도 마찬가지. 기록이고 나발이고 오늘은 쉬지 않는 걸 목표로 달려야겠다, 생각하니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 와중에 기록을 생각하고 있다는 자체가 스스로도 참 부질없다 느꼈지만.
동네는 조용했다. 간간히 산책하는 커플이 보였고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가족도 드문드문 보일뿐이었다. 온통 캄캄한 적막 속 가로등 아래 빛 받은 나무에 벚꽃만이 휘날리고 있었다. 이보다 아름다운 러닝코스가 있을까. 난 뭘 하며 살아갈까 다음 목표는 뭐가 있을까 몇 살까지는 이러이런 목표를 달성해야지, 차근차근 계획을 떠올린다. 누군가 러닝의 장점은 아무 생각 안 하고 뛸 수 있다는 점이라 했는데 난 아직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악동뮤지션 노래가 나오면 아는 형님에 나왔던 이찬혁이 떠오르고, 매일 가던 카페 앞을 지나갈 때면 저 알바생 혼자 마감하느라 힘들겠다, 근본 없는 오지랖도 생겼다가 지혜의 숲 도서관을 지날 때면 한 때 자주 오곤 했지,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자유로 초입에 다다르니 군부대가 보였다.
심학산 아래 조용한 마을 구석에 위치한 작은 부대. 반짝거리는 보름달 아래 멀고 희미하게 불 켜진 막사를 보니 오늘 낮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회사 근처에 친구가 찾아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콜렉트콜로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기계음. 전화를 받으니 뚝 끊긴다. 순간적으로 알아차렸다. 전 남자 친구가 또 핸드폰 번호를 잘못 눌렀구나. 엄마나 누나한테 건다는 걸 습관처럼 누르던 번호라 또 내 번호가 눌렸구나. 그리고 저녁때 문자 한 통이 날아들어왔다. 번호를 잘못 누른 것에 대한 사과 문자였다. 급하게 쓴 것도 아닐 텐데 알 수 없는 오타와 무한대로 이어질 것 같은 말줄임표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참 너다. 그게 문자를 받은 내 감정의 전부였다.
그런데 고작 몇 시간 지나고 달빛 아래 불 켜진 막사를 보니 그간 모르던 감정들이 올라온다. 만나는 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가 없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런 나의 연애 방식이 사실은 가장 계산적이었던 게 아니었나. 그 친구와 만나던 모든 시간이 행복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힘들고 귀찮고 재미없고 익숙한 상황이 찾아올지라도 늘 내가 할 수 있는 최고를 가져갔다. 눈곱만큼도 후회하기 싫었다. 떠난 버스에 때늦은 후회를 보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건 없었다. 그건 경험해봐서 아는 것이었다. 그땐 나의 최건이 그 친구를 위한 정성인줄 알았는데 이제와 보니 내 맘 편하자고 한 짓들이었다.
나 싫다는 남자 필요 없다, 고 말하면 주변 여자인 친구나 동생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머리론 아는데 마음이 그렇게 안 따라준단다. 나도 잘 안다 그 마음. 여자 마음이 그런가 보다. 아니 사람 마음이 그런가 보다. 내가 말하고 내가 거절하는 건 괜찮은데 상대방이 나를 거부하면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도 괜히 열 받고 자존심 상하는 거. 네가 감히? 나를?
예전엔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기가 어려웠다. 미련도 있었다. 이제는 그 모든 과정에 쏟아부어야 하는 내 에너지가 아깝다. 어차피 최선을 다했고 어차피 아닌 건 아닌 거고 어차피 인연이면 죽어라 떼어놔도 이어지는 거고. 다른 건 몰라도 이 세 개는 불변의 진리라고 맹신한 덕분에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칼로 무 자르듯 감정도 잘려나갔다. 스스로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너무 소중하니까. 그래야하는 나이니까 그게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4km 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달밤의 크라이런. 페이스 조절이 목표라 멈추질 못하고 계속 뛰었다는 슬픈 전설. 이 뜬금없는 눈물의 원인은 내가 만들어온 과정에 더 이상 순수함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 였다. 감정대로 마음을 부딪히는 거, 내가 좀 다쳐도 할 수 있을 만큼 끝까지 해보는 열정, 패기, 눈물, 분노, 오기, 미련. 뭐 이런 것들이 지금의 내겐 없다.
미안한 게 티끌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많이 미안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 친구에게.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비로소 한꺼풀 벗겨져나갔음을 실감한다. 가장 중요한 건... 보름 넘게 고생했던 위가 매우 건강해졌다는 것. 집에 돌아오니 위를 짓누르고 있던 느낌이 사라졌다. 신기하게도 거짓말처럼. 이것은 러닝의 힘인지, 눈물의 힘인지, 정월대보름 음의 기운인지 모르겠지만. 몸은 마음을 대변하고 마음은 몸의 근원이라는 말을 이렇게 체감한다. 땀도 눈물도 하다못해 호흡도. 무언가를 쏟아낸다는 건 신비로운 이익으로 돌아온다. 생각지도 못했던 달밤의 러닝에서 크나큰 이득. 오늘 밤은 아주 푹 잘 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