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이유야
친한 후배 놈이 그런다.
"누나, 사람이 싫은 데엔 이유가 없는 거야."
이 동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가깝게 지낸 지 어언 17년인 최측근. 이 친구와 10대 때 친해져서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성인이 되고 보니 이 자식, 꽤나 까다로운 성격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말괄량이과였으니까 스타킹이 나가면 나가는 대로 계곡에 놀러 가 물에 빠지면 빠지는 대로 옷에 뭐가 묻으면 묻는 대로 개의치 않는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이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가닥 떨어져 있는 게 싫어 매일 아침저녁 돌돌이로 청소를 한단다. 화장실에 수건이 조금이라도 비뚤게 걸려있는 게 싫단다. 매사에 깔끔하고 빈틈이 없다. 나 같은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뭘 해도 잘 받아주니 꽤나 털털한 녀석일 줄 알았는데, 까탈스러운 면이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 친해져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 만날 때마다 건네는 멘트다. 한편으론 동생이 안쓰럽기도 하다.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닫아버린다던가 한 번 아니다 싶으면 영 돌아보지 않는 칼 같은 면모를 보일 때 그렇다. 과감하게 내치고 신경 하나 안 쓰면 괜찮겠는데, 속은 또 여린 건지 온통 신경 쓰고 있다.
어머니 생신 맞이로 온 가족이 모여 고기를 구워 먹었단다. 몇 해 전 결혼한 누나와 매형도 함께했는데, 딱 여기까지 말하고 동생이 못 참겠다는 듯 소리친다. "아, 나는 매형이랑 안 맞아!" 이 타이밍에 갑자기? '그냥' 안 맞는단다. 자초지종 설명 좀 해보라 하니 "고기를 구워 먹는데 가리비부터 올리는 거야!" 한다. 난감했다. 고기를 먼저 굽는 게 예의였던가. 얘가 가리비를 싫어하던가. 기억이 안 난다. 눈치껏 "그래서 매형이 마음에 안 들어?" 물으니 "나 갑각류 알레르기 있잖아." 한다. 미안하다, 나도 몰랐다.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비단 가리비부터 구웠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란 걸. 그냥 싫은 거다. 싫다 보니 뭘 해도 미워보이는 거고 마음에 안 드는 거고. 어차피 평생 볼 가족. 동생이 동생의 마음을 들여다보길 바라며 차근차근 물어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누나, 사람이 싫은 데엔 이유가 없는 거야." 그리곤 멋쩍게 웃는다.
나는 오늘 좀 반대의 기분이다. 이유 없이 좋은 사람들이 자꾸 떠오른다. 도대체 뭐가 좋을까? 기억해내 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좋은 느낌만이 되살아난다. 원래 알던 사람이거나 이미 친한 사람인 경우에도 똑같은 감정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사람들, 가만 보니 공통점이 있다. 참 자연스럽다. 꾸밈이 없다. 외모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기 관리의 기준, 건강함의 척도 정도로만 여긴다. 미쳐있는 일이 있다. 그 일에 푹 빠져 산다. 주변 사람을 아낄 줄 안다. 말수가 적지만 진솔하다. 입 발린 군더더기가 따라붙지 않는다. 그리고 한결같다. 왜 오늘따라 이렇게 멋져 보이지? 하나둘 떠오른 얼굴들의 공통점은 이러하다. 전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다. 사람 좋고 싫은 데 이유가 없다지만 내가 갖지 못한 모습에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들과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