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무게

3일간의 기록

by 알로

내가 쓰는 글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게 목표였던터라 퇴고도 제대로 안 했다. 일단 올리는 게 우선이었던 탓이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채 올린 글을 다시 읽을 여유조차 두지 않고 지나가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날의 생각은 다음날 바뀌기도 하는 법인데, 요 며칠 사이 내 생각은 매순간 바뀌었고 늘 복잡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힘들다는 연락을 받았다. 잘지내냐 안부차 연락을 주는 사람도 유독 많았다. 개중엔 코로나19에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상황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글쎄, 과연 그럴까. 사실은 나도... 라는 말이 올라올 때가 많았다. 삼켰다. 대신 그때마다 글을 적었다. 몇 시간 지나고 다시 읽은 그 글엔 내 속에 있던 분노와 서러움, 울분이 담겨있었다. 올리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했다. 아무도 안 읽는 글이라 할지라도 감정의 쓰레기통처럼 적혀진 그 글은 다시 보기 꺼려진다. 오늘 오후 동네 호수를 산책하면서 며칠간 곱씹었던 감정들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렇게 정리한 짤막한 생각 몇 개.


[1]

콩이 산책을 못시켰다며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을 찾는다던 친구 부부. 차에 콩이를 태워 집앞으로 날 데릴러 왔다. 마장호수로 향하는 길 콩이는 운전자석과 조수석 사이에 걸터앉은 채 남주인 한 번, 여주인 한 번, 나 한 번. 한 명씩 번갈아가며 쉴 새 없이 아이컨텍을 시도했다. 관심을 달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온다. 같이 있으면 저렇게도 사랑을 갈구하는 게 반려견이란 존재구나, 새삼 깨닫는다. 6년을 마당에서 살다 작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하루가 생각난다. 산책할 때와 밥줄 때를 제외하면 하루는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우리집 담장을 들여다보는 행인이나 집 주변을 멤돌던 길고양이들, 마당 흙바닥의 개미들 정도 되려나. 방금 눈 마주쳤는데 또 마주쳤을 때 처음 마주친 것마냥 콩이를 예뻐하는 친구 부부를 보며 난 하루를 키울 자격이 안 됐던 사람이란 걸 깨닫는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수많은 나날을 혼자 보냈을 우리 하루는.


[2]

몇 주 전 청첩모임에 나갔었다. 내 목걸이를 본 동생 한 명이 OOOO 브랜드 목걸이냐 묻는다. 맞다 했다.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줬던 목걸이다. 헤어진 사람이 준 걸 왜 차고있냐 물어온다. 내 취향에 딱 맞는 디자인이기도 하고 전에 하던 목걸이가 어디로 갔는지 못찾기도 해서, 였으나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아 '그냥'이라 얼버무렸다. "그거 심장박동 목걸이아니에요? 작은 심장박동에도 반짝거린다고." "전혀 몰랐는데." "뭐야, 그걸 왜 몰라. 그걸로 유명해진 거 잖아요." 그런가보다, 흘려들었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어제 양치질하는데 문득 궁금해져 숨을 참아봤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작은 하트가 정말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이렇게 예쁜 스토리를 가진 목걸이였다니. 그 스토리가 곁들여졌다면 그날밤은 훨씬 빛이 났겠지. 스토리를 가지고도 못판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3]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다시피한 친구가 아파트 (자가)를 전세주고 원룸으로 이사를 간다했다. 석달째 수입이 없는데 고정지출이 많아 감당이 안 된다 했다. 친구의 고정지출(직원들 월급)은 내 월급을 훨씬 넘어서는 금액이었다. 많이 힘들겠다는 말을 친구에게 건네면서도 난 그 말에 진심을 담지 못하고 있었다. 친구는 자가 소유자니까. 어떻게든 다른 일을 구할 충분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니까. 나보다 나은 상황이라 여겼다. 이 시기만 잘 버텨내면 훨씬 좋아질 여건이라 생각했다. 대신 기약없는 기다림이 계속될테니 고정지출을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보자 했다. 이런저런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나 싶더니 친구가 날 빤히 쳐다본다.


"나는 너가 부럽다."

"왜?"

"넌 본가에 살잖아. 굶어죽을 걱정도 없고 일자리를 잃어도 잘 곳이 있잖아."


서른 넘어 본가에 산다는 건 그리 떳떳한 일이 아니다. 9년간 자취를 했었고 현 직장이 본가에서 가깝다는 좋은 핑계가 있음에도 독립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늘 마음 한구석에 있다. "내 집도 아니고 부모님 집인데 뭐가 좋아. 독립해야지." 친구는 내 대답에 한 마디를 더 얹얶다.


"외동이면 네 집이나 마찬가지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말을 남의 입으로 듣는다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 부정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 남의 불행은 내 것보다 작아보이고 남의 행복은 내가 가진 것보다 커보이는 것일까. 친구의 '힘들다'는 말을 간과했던 나를 돌아본다.


[4]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던가 누군가와 그만 만나게 됐다고 말했을 때 "왜 바로 말을 안 했냐"며 서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나고 헤어짐이 중요한 이벤트인 건 맞지만 다 적절한 타이밍이 있는 건데 조금 늦게 알면 세상이 큰일나는 것처럼, 엄청난 배신을 당한 것처럼 대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사람과의 관계를 재는 기준은 참 다양한가보다. "헤어진지 한 달이나 됐다고?" 하더니 언니가 울었다. 코로나로 만날 일도 없었고 안부차 전화해서 굳이 말할 거리도 아니라 생각했을 뿐인데 언니는 거기서 눈물을 쏟는다.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버텨냈냐, 내가 몰라서 미안했다 말해온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헤어졌다는 말 한 마디에 이런 대답이 돌아올까 싶다. 참 깊은 사람이다.


[5]

고등학교 후배 중 친한 여동생이 하나 있다. 20대때 줄곧 어울리던 사이였다. 그 친구는 술을 못하고 난 술을 좋아하고, 그 친구는 조용하고 난 왈가닥이고. 그 친구는 매사에 소극적이고 난 지나치게 적극적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런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걸 신기하게 여겼다. 우린 성향이 비슷했지만 성격이 정반대였다. 동생과 소원해지기 시작한 건 그 친구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남편의 구속이 상상을 초월한다 했다. 청첩모임을 마지막으로 우린 3년 동안 얼굴볼 일이 없었다. 후배들과 다같이 모이는 날이면 동생은 늘 당일에 파토를 냈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연락도 점점 뜸해졌다.


이따금씩 카톡이 오긴 했다. 대부분 보험 권유였다. 동생은 은행직원이었다. 일 년에 한 두번씩 보험실적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한 번은 자기가 대신 돈을 내주겠다며 내 명의로 보험을 들어도 되냐 했다. 약관을 읽어보니 중도해약도 가능하고 소액납입에 들어도 손해볼 것 없는 상해보험이었다. "그래, 가입은 해도 되는데 너 얼굴도 안 보여주면서 지지배야, 다음엔 모임 나와라."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처음 몇 달은 꼬박꼬박 넣는가 싶었는데 어느 날 미납고지서가 집에 도착해있었다. 깜짝 놀라 동생에게 연락하니 이제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해약해도 된단다. 가입도 너가 알아서 했으니 해약도 알아서 해달라 부탁했다. 동생을 알아보겠다더니 또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두어달이 지나고 또다시 집에 미납고지서가 날아온 날, 나는 폭발했다. 보험권유, 무책임한 뒷처리, 수많은 약속 파토와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던 지난 날. 그간 묵혀둔 감정들을 그날밤 전부 꺼내보였던 것 같다. 머리채를 쥐어잡고 몸싸움을 벌인 건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이를 갈고 화를 냈던 것 같다. 동생은 한 번도 본 적 없던 내 모습에 적잖게 당황해했고, 난 다음날 보험을 무사히 해약할 수 있었다. 지금은 언제그랬냐는 듯 잘 지낸다.


안 볼 사이였다면 화가 나지 않았겠지. 화를 냈으니까 다시 이어질 수 있었던 거야. 자위해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불편하다. 서운함과 분노를 잘 전달한다는 건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니다. 그후로 이 사람을 그만봐야겠다 싶을 정도의 서운함이나 화남을 느낄 때면 이야기하는 대신 거리를 두는 버릇이 생겼다. 뭐가 맞는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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