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 많았구나, 그랬구나

by 알로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제품 상세페이지 만들려고 하는데 아이디어 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친구는 식료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사업가다. 제품도 잘 팔리고 인지도도 꽤나 있는 편이다. 맛과 실력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데 마케팅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느꼈었다. 한 번 먹으면 재주문할 확률이 높을 텐데, 기존의 마케팅엔 확 끌어당기는 스토리가 없었다. 잘됐다 싶어 평소에 생각해둔 보완점을 말했다.


조금 호응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되받아친다.

말이 길어질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직접 만들고 제조에서 유통까지 책임진다는 점을 좀 더 어필해보면 어때?"

"그게 요즘은 메리트가 없더라고. 오히려 인증마크 하나 더 붙어있는 게 나아."

"그래? 타깃이 누군데?"

"나는 부모님 세대지."

"그러면 더 좋지 않을까?"

"근데 부모님이 직접 사진 않으니까 소비자는 결국 자식 세대잖아. 스마트 컨슈머들한텐 그게 안 먹혀."

"그럼 음식 사진을 좀 더 타이트하게 찍어보는 건?"

"그렇지. 그래야지. 그런데..."


딱히 호응은 없다. 말이 길어질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다. 아이디어를 주고 받기는커녕 아이템 발제했는데 컨펌도 안 해줄 거면서 트집만 잡고 있는 상사랑 대화하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 그대로 괜찮아 보여" 말해버렸다. 정적이 흘렀다.


"아닌데, 뭔가 필요한데... 아이디어 좀 줘봐."

"아니야. 지금 잘하고 있어. 고생하네."


또 정적이 흘렀다.


"나 진짜 고생 많이 했다. 너무 힘들다. 직원 세 명이 한 번에 그만뒀어. 사람 고용하는 일이 가장 힘들더라. 내가 애들 마음을 몰라줬던 거지. 강요만 했던 거야. 가게가 잘 되니까 욕심도 생기고, 더 잘하자 잘하자만 외쳤던 거지."


어쩌면 친구는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게 전부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내 눈엔 그저 열심히 그저 올곧게 부지런한 사람인지라 딱히 해줄 조언이 없기도 했다.


통화를 끊을 무렵 친구는 다시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고맙다, 오랜만에 전화도 주고. 네가 말한 대로 그런 스토리를 한 번 생각해봐야겠네.


묻힌 줄 알았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예상치 못했던 수긍에 내 입가에도 미소가 나온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을 삼키는 거, 말을 듣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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