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의 기적

by 알로

연초부터 브런치에 하루 하나씩 글을 올려왔다. 미완성이든 뭐든 무조건 하나. 새해 목표였다. 근래 들어 지인 몇 명에게 브런치 필명을 공유했다. 동시에 조심스러워졌다. 감정이 요동치는 글을 적으면 다음날 어김없이 연락을 받았다. 괜찮아? 술 한 잔 할래? 정작 나는 글로 털어버리는 감정을, 지인들은 며칠 동안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의도치 않은 무책임함에 내 글을 다시 꺼내보았다.


보잘것없다 생각하는 글도 많고, 수년간 묵은 감정을 털어낸 글도 있었다. 꽁꽁 숨겨온 민낯을 활자로 옮겨놓으면 이상하리만큼 한결 편안해졌다. 어느 순간 누가 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당해진 것인지 무뎌진 것인지 모를 그 뻔뻔함 덕에 글쓰기는 끊길 듯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쌓여가는 리스트를 보며 이게 과연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가져다줄까 자문한 적도 많다. 지키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는 혼자와의 싸움이 200일을 달성했을 때 즈음, 거짓말처럼 브런치에서 알림이 떴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제안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50분.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으로 대체돼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될 거라 했다. 주제는 경력, 직장, 삶, 전문가로서 성장하기 위한 준비과정. 너무 버거운데요? 브런치에 적힌 소재들도 괜찮아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인들에게 온라인 강연을 한다 하면 '네가?' 다소 의아한 표정이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 조심스레 물어왔다. "어떤 내용으로?"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내 표정이 딱 그랬다. 강연을? 대학생한테? 내가?


우스갯소리로 '나처럼 살면 망한다'는 콘셉트이라 둘러댔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다. 스물네 살, 다섯 살. 그러니까 내가 한창 진로에 고민이 많았던 나이. 다시 돌아가라 해도 절대 돌아가지 않을 나이. 값지지만 힘들었던 나이. 그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지금부터 네 강점을 만들어놔라. 뭐든 꾸준히 할 수 있는 거 딱 하나만. 그럼 달라진다. 그때의 난 그러지 못했으니까. 강연 주제를 '나만의 강점을 가진다는 것'으로 정했다. 광범위하고 추상적이지만 가장 간절한 목소리였다. 20대 중반, 외롭고 힘들었던 나에게 지금의 내가 건네는 이야기.


하지만 이마저도 꼰대처럼 들리겠지. 그 나이엔 뭘 들어도 흘려들을 나이 아닐까. 아니, 흘려들어야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온몸으로 부딪히고 나서야 이게 아니었구나 체감하는 그것이야말로 값진 경험이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자기 검열을 하다 보니 정작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 자신이 없어졌다. 머릿속이 하얀 나날이었다. 문득 회사 사무실에 자리를 지키며 밤낮 노트북을 두들기는 인턴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생들이다. 6개월 동안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휴학계까지 내가며 이 자리를 찾아온 친구들이다. 바라만 봐도 예쁜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신기했다. 똑같은 자료를 가지로 강연하는데 매번 달랐다. 강연이 끝나고 질문 타임 10분에 반응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창 책 읽기에 공들였던 5월 둘째 주엔 책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글쓰기에 열광했던 6월 둘째 주엔 글쓰기에 대한 궁금증이, 유독 힘든 아이템을 취재하고 있었던 셋째 주엔 보도국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나와는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공대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 질문세례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 어느 것 하나 내가 예상한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건 없었지만 결국은 나의 컨디션과 상황에 강연의 컨디션도 달라진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로부터 발신되는 소리는 달라진다는 것. 당연하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변화.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었던 게 사실은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피해 갈 수 없는 예리한 질문도 많았다. 모든 질문에 준비된 상태 일리가 없다. 평소 생각하는 걸 털어놨다. 기회라는 건 언제 훅 치고 들어올지 모르니까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해요, 강연에서 강조했던 나의 말들은 질의응답에서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떨렸고, 긴장했던 그 스릴감이 즐거웠다


평소 내 블로그를 보고 있다는 친구도 등장했다. 반갑고 고맙고 신기했다. 그 어떤 말과 글도 섣불리 내놓으면 안 된다는 걸 절감했다. 들숨에도 날숨에도 책임감이 실려있어야 한다. 작가는 더 그렇다. 그러니 강연은 결과적으로 내가 배워가는 게 훨씬 많았던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기도 하고, 필요에 의한 경우가 아니면 듣는 쪽을 택한다. 발표나 면접 때를 제외하곤 10분 이상 끊김 없이 말해본 기억도 없다. 시뮬레이션해보겠다고 이어폰 끼고 중얼중얼거리며 걸어 다닌 나날이 있었다. 혼잣말을 많이 해야 했기에 마스크가 유용했다. 혹시 야근할까 봐 강연 시간은 죄다 가장 늦은 시간대인 21시로 잡았는데, 그럼에도 방송이 꼬여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날엔 세상에 존재할 모든 신을 불러대며 울부짖었다.


학번이 20으로 시작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풍족한 세상에 태어난 세대다. 훨씬 앞서가는 생각을 하고 자란 아이들이다. 손바닥만 한 기계 하나로 온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 무엇을 상상해도 내가 가진 그 이상일 거다. 사실은 내가 해줄 수 없는 말이 없었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길래 "오늘의 걱정은 오늘 끝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매듭지었다. 아픈 청년에겐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머나먼 안드로메다 이야기로 치부되듯 나의 말도 그들에겐 비슷하게 들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홀가분하다. 다른 사람이 아닌, 사실은 나를 갈고닦아야 하는 시기라는 걸 절감한다. 총 여섯 번의 강연을 마쳤다. 봄에 시작해 가을이 됐으니 약 반년. 행복하고 과분한 기억이었다.



안녕하세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 좋아한다고 질문한 학생이에요 ㅎㅎ 무엇보다 강연 너무 재밌게 잘 들었다고 전하고 싶어서 알려주신 카톡 아이디를 찾아왔어요.

저는 올해 23살이에요.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은데 그러면서도 쉽사리 뭘 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제 또래의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요)

그래서 이번 강연이 더욱 와 닿았어요.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글이 주는 영향력도 크지만 영상의 힘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뉴스룸 작가가 되었다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됐어요. 그만큼 저도 글을 좋아하고 (쓰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요) 또 영상에도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다이어리를 끄적이고 여행 영상을 개인적으로 만들어 보는 정도고, 특별히 전문적이라거나 놀라운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뉴스룸 작가라는 게 더욱 끌리더라고요.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듯, 혼자 잘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보탬이 되어 좋은 걸 만드는 거잖아요?

강연을 통해 뉴스룸 작가라는 일을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막연하고 막막하지만, 좀 더 준비를 하고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두서없이 말을 늘어놨는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지금 아니면 못 전할 듯해 이렇게 전해요. 아무튼 좋은 강연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밤 보내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잘려나간 머리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