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가지의 다정함

by 알로

긴 머리로 지낸 지 3년. 단발로 자르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간 자리. 내심 반응을 기대했으나 알아채긴커녕 내 얼굴도 안 쳐다보는 것 같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정적이 흘렀을 때 친구는 갑자기 고개 들어 날 바라봤다.


"머리 잘랐네?"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 인척 콧바람에 실어 서운한 척해본다.


"야, 너는 무슨 만나지 한 시간 만에 이야기를 해."


친구도 웃는다. 당황한 척 손사래 친다.


"아니야, 아까부터 알고 있었지. 심경변화가 있었어? 무슨 일이 있나 생각했지. 괜찮은 거지?"


귀엽다. 귀여운 다정함이다.


머리를 자르고 처음 출근했던 날, 여느 때처럼 인턴들과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뒤에서 "어, 어! 어!?" 소리가 들린다.


"작가님, 머리 자르셨죠!"

"와, 이게 훨씬 나아요. 산뜻해요. 진짜. 아니 아니 진짜로!"


앙증맞다. 애써 기분을 띄워주려는 의도가 살짝 보이는 게 더 귀엽다. 앙증맞은 발랄함이다.


머리를 자르고 퇴근해 집에 돌아왔을 때 아빠는 별 말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 보더니


"어? 이쁘다. 아빠는 하루가 지나도록 몰랐네. 깔끔하다."


아빠만이 건넬 수 있는 칭찬이다. 아, 어떻게 어제 보고도 모를 수가 있어, 라는 말이 아빠한텐 안 나온다. 이미 아빠가 다 말했으니까. 그걸로 좋다. 하루가 지나도록 몰랐다는 말에 아빠만의 다정함이 묻어난다.


그러니까 사실은 다양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현하는 것도 건네 오는 말도. 그냥 사람마다 다른 것뿐이니까 조급해하지 말아야지. 조금 기다려볼 줄도 알고, 각기 다른 다정함을 알아볼 줄도 아는, 그런 사람이어야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브런치의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