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현관문에선 작은 패션쇼가 열린다.
모델은 한 명, 관객은 둘이다. 둘은 관객이라기보단 평가단에 가깝다. 때론 환호성을 때론 탄식을 뱉는다. 탄식은 주로 "구두 너무 높은 거 아니니?" "비 오는 날에 그런 옷은 좀." "그 옷은 그렇게 안 예쁜데?"라는 식이다. 엄마의 '안 예쁘다'는 '단정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혹평을 들으면 대부분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며칠 전엔 매우 드물게 아버지가 음정을 서너단계 올린 하이톤으로 칭찬했다.
"아이고, 우리 딸. 참 예쁘네!"
마침 머리를 자른 다음날이기도 했고, 아끼는 옷을 꺼내 입은 날이기도 했다. 칭찬을 들은 날은 "다녀올게요" 하고도 괜히 한 번을 더 돌아본다. 엄마랑 눈 한 번 마주쳐본다. 방충망 너머에 서있는 아버지를 한 번 더 눈에 담는다. 오늘은 일찍 들어와야겠다, 다짐한다. 알다가도 모를 심보다.
자아성립은 물론이거니와 독립을 한참 전에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딸자식이다. 나만 그런가. 모르겠다. 부모의 말 한마디에 나의 하루는 좌지우지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런 말 없이 "일찍 들어와." 하는 말엔 대문을 나서기까지 옷차림을 계속 점검한다. 영 찜찜하다. 오늘은 아무 말도 없지. 색깔이 좀 안 맞나. 별론가. 안 예쁜가.
사실은 고등학교 때 그런 말이 듣고 싶었다. 사실은 20대 때 그런 말이 듣고 싶었다. 아버지의 출장이 잦거나 우리 모두가 그럴 여유가 없을 만큼 삶이 빠듯했거나 유학길에 올라 혼자 살았거나. 현관문에서 가족을 마중하고 배웅을 받는 그런 삶을 매일 지속한다는 건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의 10분은 별 거 아닌 듯 사소하지만, 지나고 보면 꽤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래서 즐겁다. 혼자 살 땐 느껴본 적 없었던 온기다. 겁이 많아 전기 스위치를 삼 세 번 확인하고도 두꺼비집까지 내려야 안심하고 외출하던 시절이 있었다.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봐도 영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불안정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이 즐겁고 소중하다.
언제까지 출근길 패션쇼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온 힘을 다해서 예쁘게 차려입을 것이고, 환하게 인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