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화두는 "배드민턴을 선택한 이유"다. 활동 중인 스포츠 브랜드 서포터즈 과제다. 코트 밟은 지 수억만 년 지난 것 같은데 이렇게나마 배드민턴과 이어질 수 있으니 좋다. 코로나19로 새로운 취미를 찾기 시작하면서 배드민턴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단다. 내게 주어진 숙제는 배드민턴 동호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마케팅을 제안하는 거다. 질문은 가장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신이 배드민턴을 시작한 이유는?'
⠀
나 역시 서핑에, 헬스에, 그 외 집콕문화에 눈을 돌렸고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길거리서 요넥스 입은 사람을 보면 아는 척하고 싶어진다. 가방에 배드민턴 라켓 삐죽 튀어나와 있으면 미소 한가득 머금고 "먼저 타세요" 양보한다. 최근 5년간 가장 많이 웃었던 때는 언제? 라는 (받을 리 없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연 '클럽에서 내기 배드민턴치던 2018년 가을'이라 답할 거다.
⠀
배드민턴 그까짓 거 뭐라고. 하게된 이유에 이렇게 구구절절하나 싶지만 말이다. 골프치는 동생이 "배드민턴도 돈 많이 들어?" 오랜만에 만난 지인도 "요즘은 배드민턴 못 치지?" 집에 오는 택배상자에 "요넥스야?" 묻는 엄마를 보면. 배드민턴은 어느새 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단 뜻이다.
⠀
진짜 내 이상형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결혼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배드민턴은 딱히 매력적인 운동은 아니었다. 땀 질질 흘리고, 골프웨어처럼 세련되지도 않다. 좀만 무리하면 관절 아작나고, 침 맞으러 한의원가면 의사 앞에서 괜히 죄인되는 운동이다. 파도 없어서 못하는 서핑이나 바람이 변수가 되는 골프완 달리 배드민턴은 딱히 도망갈 구멍이 없다. 내 실력과 인성이 코트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
그래서 좋았다. 흠뻑 젖은 민낯으로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야한다. 그 적나라함이 좋았다. 잘 친다는 건 파트너에게 볼을 만들어주는 것, 이라 배웠다. 그 호흡이 좋았다. 요령 없이 성실한 사람을 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혹하는 내게 배드민턴은 딱 그래보였다.
⠀
코로나19는 인간과 공존할 거란 이야기가 있다. 빌 게이츠는 코로나19 종식을 내년 말쯤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배드민턴은 짧게는 몇 달, 길 게는 일 년 이상 보류할 수도 있다. 수백명이 새벽같이 모여들어 승급을 위해 리그전을 펼치는 각종 대회, 동네 클럽에서 땀 뻘뻘 흘린 뒤 한 자리에 모여 기울이는 술잔, 매 포인트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바닥에 뒹굴고 복근이 터지게 웃어대는 일은 이제 다른 세상 이야기다.
코로나 언어로 하면 고위험 다중이용시설에 모인 수백명이 경기를 펼쳐 우려되는 집단감염, 1미터 간격 무색하게 삼삼오오 모여 비말 가득한 술잔을 부딪히는 행위, 비말량이 많은 실내공간에서 무분별한 신체접촉. 요즘 같은 시국에 경악할 만한 행위들이다.
⠀
그러니 한편으론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이제와서 곱씹는다 한들, 그저 추억팔이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는 씁쓸함 또한 몰려온다. 코로나가 종식됐을 땐 또다른 형태로 배드민턴을 하게 되겠지. 골프장 필드처럼 간격을 두고 예약제로 실행될 수도 있겠다. 제한된 인원만 입장이 가능한 전용 구장이 생길 수도 있겠다. 예전처럼 동네 약수터에서 누구나가 즐기는, 저렴하고 편하고 재미있는 생활체육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도 있겠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며 곱씹는 배드민턴의 매력은 사실 무궁무진하다.
이번 한 달 동안 찬찬히 고민해보고 싶다. 생각보다 이 스포츠에 큰 애정을 갖고 살아왔다는 걸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