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승민 Oct 04. 2020

자연이 주는 힌트

매미가 우는 나무 아래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위로 한 번, 아래로 한 번 시선을 옮길수록 조금씩 물들어가는 계절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여름이랑 가을이랑 같이 있네. 여기는 여름이 더 많네. 이쪽은 완연한 가을이구나.


사무실에 있을 땐 몰랐다. 만남이 잦고 혼자 있는 시간이 비교적 적었던 시절엔 몰랐다. 사람들이 긴팔을 입으면 가을인가. 패딩을 입으면 겨울인가, 했다. 그 시절 내 감각 속 계절은 선명한 경계선을 동반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란 뚜렷한 선 없이 혼재된 채 조금씩 공존하며 물들어간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은 참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데, 자연은 신기할 정도로 정직하다. 그래서일까. 사진첩에 꽃 사진이 늘었다. 유독 태풍이 잦았던 올해, 날씨를 착각한 나머지 초가을에 꽃망울을 터뜨려버린 부산과 울릉도의 벚꽃나무처럼. 자연은 받은 대로 고스란히 내뿜어버리는 정직한 존재다. 바라만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 예쁨은 어디서 온 걸까,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런 색깔을 띨 수 있을까, 견고한 꽃받침은 또 무엇이며 줄기는 어쩜 이리도 딱 들어맞게 생겼을까. 모든 게 기특하고 대견하다.


최근 물생활을 시작했다는 지인이 있다. 여기서 물생활이란 집에 수조를 놓고 열대어를 키우는 걸 말한다. 수년간 노력했지만, 그간 시도했던 열대어들은 매번 수십 마리씩 죽어나갔다고 했다. 적절한 온도와 수질을 세심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욕심이 앞선 탓이었으리라 그는 고백한다. 수조를 가득 채운 물을 한 번에 비워내고 깨끗해진 물을 한 번에 담으면 되는 건 줄 알았다고. 공부해보니 물은 30%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30%를 채워 넣는 것이었다고. 그렇게 욕심부리지 않고 환수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거품이 사라지면서 물 전체가 맑아지더라고.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하루아침에 달라질 거야! 하고 모든 생활패턴을 한 번에 바꾸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내 마음의 물을 30%만 비워보는 거야. 그 자리에 새로운 걸 채워 넣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깨끗해져있지 않을까?


물생활의 환수도, 정서적인 안정도, 생활도 습관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었음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자연은 끊임없이 힌트를 주고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군데군데 지나간 계절과 다가올 계절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너무도 깔끔하게 끝을 맺고 시작을 아우른다. 마법도 이런 마법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