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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08. 2020

서울역 편의점, 단골손님

정동진에서 192시간

아침에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나왔다. 서울역 도착할 때쯤 되니 거의 다 마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기차 출발시간보다 넉넉하게 도착했겠다, 잠깐 바깥에 나가 바람도 쐬고 역사 편의점에도 들렀다. 김밥 하나, 껌 하나 사면서 텀블러에 담을 따뜻한 물도 얻을 요량이었다.


평일인데 편의점 김밥 진열대엔 삼각김밥이 달랑 하나 남았다. 매콤 치즈 마요. 남을 만한 메뉴라 생각하며 어쩔 수 없이 집어 드는데, 아래쪽에 돼지 삼겹 김밥이 보인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매콤 치즈 마요를 내려놓았다. 기분 좋게 떠나는 여행이니 맥주 한 캔 살까 고민했지만, 한 번 참았다. 계산대에 가서 카드 꽂고 결제하며 슬쩍 물어봤다.


"혹시 텀블러에 뜨거운 물 좀 담아가도 될까요?"

"그럼요, 돈 안 받을게요(웃음)."


덩달아 웃었다.


"내가 왜 그러는 줄 알아요?"

고개 젓는 신호에 사장님 말문이 트였다.


"서울역에 노숙자들이 많거든요. 어디서 컵라면을 나눠주나 봐요. 하나씩 다 들고 들어와서 물을 담아가요. 못 담게 할 순 없잖아. 그런데 너무 많이 오니까 한 번은 이제 우리 꺼 사서 드세요, 했더니 그다음부터 안 오시더라고요(웃음)."


서울역 편의점엔 그런 사정이 있을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노숙자분들이 먹고 싶으니까 한참 쳐다보다 가시거든요. 사실 마음 같아선 폐기 처분하기 직전인 빵이나 김밥들도 드리고 싶거든요 (유통만 금지될 뿐 바로 먹는 데엔 문제없다. 단, 바로). 그런데, 먹고 탈 나서 점주한테 항의하는 경우가 있대요. 그래서 그것도 못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경우의 수다. 노숙자가 생각보다 많이 찾아올 거란 것도 예상 못했다.


"그럼요, 얼마나 많이 오는데요. 한 번은 일 년 정도 머리를 안 감은 것 같은, 아니 여기가 (머리를 가리키며) 완전히 떡이 돼서 굳어있는 여자분이 들어와서는 하나하나 다 들어서 보고 만지고 가더라고요. 그럼 또 나는 하나하나 다 따라다니면서 소독해야 되고(웃음)."


"노고가 많으시겠네요."


말도 마라는 듯 사장님은 손사래 친다.

"서울역은 별의별 일이 다 있어요. 참 재밌어요."


호탕하게 웃는 사장님. 슬슬 기차 출발시간이 다가와 고개를 살짝 돌리는 내 시선을 좇는다.


"거기 뒤에 보이죠? 커피 옆에. 그게 뜨거운 물이에요. 많이 담아가요."


당연한 것 같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은 나눔에 친절이 한스푼 더해졌다. 막 들어온 여성이 매콤 치즈 마요를 집어 들곤 머뭇거리다 계산대로 향했다.


"아이고, 하나밖에 안 남아서 어떡해요."


웃으며 계산해달라던 여성과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사장님을 뒤로하고 편의점을 나왔다. 나에게 좋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겠구나. 참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저분은 긍정적이시구나. 살 돈이 없어도 진열된 먹거리를 보러 들어가는 마음은 어떨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생각할 거리가 던져진다.


좋다. 출발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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