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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Oct 11. 2020

강태공의 매력

 


바다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날씨다. 하늘은 높고 푸르고 청명하다. 온갖 좋은 수식어를 갖다 놔도 아깝지 않은데 심지어 연휴다. 비수기에 한적한 가을 하늘 아래 바다 생활을 상상하고 왔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어딜 가도 놀란다.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식당 앞 방파제를 거닐 생각으로 길을 건넜다. 입구에 주황색 띠가 둘러쳐져 있다. 들어가지 말란 뜻이겠다. 하지만 이곳은 방파제다. 입구에 수많은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는데, 사람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면? 테트라포트로 죄다 내려가 있다는 뜻이겠다.  



몇 번을 강조해도 모라란 게 안전이지만, 그 몇 번을 넘어서고라도 사람들은 선을 넘는다. 낙상사고가 나에겐 벌어지지 않을 거란 믿음. 쌓아온 경험치가 몇 년인데 갑작스러운 해프닝 정도는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라고 쓰고 오만함이라고 읽곤 한다).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을 나는 늘 취재한다. 이 그림이 너무나 익숙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한 이유로 취재를 해보겠다는 심산으로 선을 넘어 들어갔다는 핑계를 대본다.

 

강태공에겐 파도가 무섭지 않은 걸까. 어쩌면 월척을 위해선 목숨까지 내놓겠다는 각오로 들어간 걸지도 모르겠다. 넓고 넓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작은 그림자 하나. 가을 파도는 거칠고 높다. 그 박력이 매력인지라 가을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겠다. 2-3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파도가 방파제를 적신다.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칠 때마다 흰 거품 덩어리들이 튀어 오른다. 낚시꾼들은 견고한 두 다리로 굳건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지만 바라보는 입장에선 자연 앞에 선 작은 인간이 위태로워 보이기만 하다.


이곳이 현장이었다면 카메라로 열심히 촬영을 했을 거다. 보통 저렇게 위험한 경우엔 섣불리 인터뷰를 시도하지 못한다. 혹여나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순간 주춤하며, 모든 찰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어보거나 들어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겠지. 무섭지 않으세요? 위험해 보이시는데요. 굳이 테트라포트까지 나가서 낚시를 하시는 건 왜일까요.


하지만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건 행위자의 반응을 넣기 위한 것일 뿐. 좀 더 바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 조금은 심장이 아찔해질 만한 스릴감을 즐기고 싶은 마음. 광활한 바다를 눈앞에 담고 잔뜩 긴장한 채 서있는 그들이 사실은 자연 앞 인간의 나약함을 가장 절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살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테니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걷다 보니 이번엔 상상도 못 할 곳에 몸을 기대어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왜 인간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스릴감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걸까. 새삼 또 의문이 든다. 여행하다 보면 곧잘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뭐 잡으셨어요? 여기서 뭐하세요? 자주 오세요? 같은 질문들을 스스럼없이 던지지만, 여기선 그러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저 협소한 공간에서도 온 힘을 다해 몸을 돌리고, 힘겹게 팔을 올려 떡밥을 던지는 걸 바라볼 뿐이다.


그러니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얼마나 낚시가 좋으면 목숨을 담보로 할 수 있을까. 당신 저기 들어가, 하고 작은 공간에 밀어 넣으면 싫다고 몸부림칠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행위엔 열악한 공간에도 마음을 내어줄 너그러움이 생기나보다. 새삼 신기하다.

차를 세워둔 자리 뒤편에선 삼겹살 파티가 한창이다. 신문지를 깔고, 가스버너에 불을 켜고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삼겹살 노른 내를 맡으며 이곳이 천국이다, 할 것이다. 무언가로부터의 자유란 별 거 아닌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나 보다. 취재였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인상을 찌푸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수십 명이 모여있는 낚시터인데 누구 하나 떠드는 사람도 없었다(수십 명이 모인 공간에 소음이 없다는 건 이례적인 상황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적당한 자리를 찾아 헤맨다. 출퇴근 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볼 수 있는 자리 찾기와는 다르다. 눈빛부터가 다르다.


생각보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그냥 가만히 낚싯대에 달린 찌를 바라보거나 먼 산을 바라보거나. 기껏해야 담배 한 대를 태우는 정도다. 낚시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꾼들이 말하는 입질의 손맛을 나는 모른다. 하지만 내 몸뚱아리 하나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그 공간은 그 어느 곳보다 고요하다는 것. 낚시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쓰레기는 발생한다. 그럼에도 하늘은 예쁜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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