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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Nov 12. 2020

남편과 아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시동을 걸자마자 한껏 볼륨을 높여놨던 내비게이션 음성이 나왔다. 귀가 울렸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많이 놀란 모양이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남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버럭 했다. 운전하는데 왜 소리를 질러! 아내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핸드폰은 여전히 조수석 바닥에 떨어진 채. 차 안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핸드폰을 집어 들며 아내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근데 소리가 너무 컸잖아. 놀랐어.


남편은 대꾸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을 닫고 주유구 뚜껑을 열었다 다시 닫는 남편을 뒷유리 너머로 쳐다보던 아내가 말한다. 참 공감을 못해. 왜 그럴까.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온 건데, 저렇게 짜증부터 낸다. 입을 삐쭉거리며 나에게 동조를 구해온다. 사과를 먼저 건넨 아내가 기특하다 생각하며 많이 놀랐냐 물으니 한숨을 내뱉는다. 아우, 싸우는 거 지겹다 정말.


친구 부부의 싸움을 보다보니 그날 아침 우리 집 현관문에서 벌어진 작은 다툼이 떠올랐다. 운동복 차림으로 여행길에 오르는 나에게 아버지는 운동복 바람이네? 말해왔다. 옆에 서있던 엄마가 거든다. 놀러 가는데 운동복이 편하고 좋지 뭐. 반기를 드는 것 같은 엄마의 말투에 아버지는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당신은 왜 말을 그렇게 해? 엄마는 다소 당황한 얼굴이다. 아니, 편해 보이니까 좋다는 뜻이지. 아,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요. 현관문을 닫고 나왔다. 닫힌 문 너머로 아버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시 문을 열었다. 아침부터 싸우지 마시고요. 저는 다녀올게요.


결혼한 지 3년 차인 부부는 오늘도 타협점을 찾기 위해 아웅다웅 싸운다. 아웅다웅은 조금 귀엽게 표현한 거고, 꽤 격하게 싸우는 편이다. 결혼 38주년을 바라보는 부부도 현관문 앞에서까지 티격태격 지낸다. 부부는 왜 싸우는 걸까. 비단 남자와 여자의 화법 차이일까. 허물없는 관계에서 드러나는 민낯일까. 모르겠다. 잘잘못은 없을 거다. 그저 조금 덜 참고 조금 더 참고의 차이겠지. 잘못된 게 있다면 그건 오로지 단 하나. 고성이다. 목소리를 높여 싸우는 건 어떤 상황에서든 옳지 못하다.


연애를 안 하고 있을 땐 이 모든 싸움이 남일 같다. 이쪽도 이해가 가고, 저쪽도 이해가 가니 그저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냥 좀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가운데에 서서 홀로 불자로 빙의된다. 연애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점이 오면  나 역시 파이터의 역할을 뒤집어쓴다.


나는 싸울 때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이었더라. 다행인 건지 모르겠으나 만났던 사람 중에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사람은 없었다. 아마 그런 사람이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거다. 오히려 소리를 질렀다면 내가 지르는 쪽에 속했는데, 상대방이 말없이 냉정해지면 나 역시 금세 차분해지는 편이었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화를 내는 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탓이다.


가을이라 그런가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없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연애. 이제 좀 할 생각이 올라온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정서가 안정됐을 때, 조금 더 유해진 사람으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 그때,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만날 사람부터 찾지 않고 잘 싸울 준비부터 한다는 게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잘 싸우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어떻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던가. 매일 조금씩 생각해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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