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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Nov 14. 2020

왜 못살게 구니

여수 난개발을 취재하고 있다

갯바위에 산책로를 조성하겠다며 시멘트를 부어버리고, 산 정상에 동백숲을 만들겠다며 임도를 뚫어놨다. 도로는 애초에 약속했던 3미터에 7미터가 더해졌다. 불법도로 10미터는 허옇게 굽이진 비탈길로 산 정상부터 땅 아래까지 이어졌다. 둘 다 한 업체의 만행이다. 숙박시설과 서커스장, 유료공원에 전망대까지 설치해가며 산을 뒤덮어놓고 그걸론 양이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보다 못한 누군가가 고발했다. 시는 원상복구 명령을 요구했고, 경찰을 수사에 착수했다지만, 훼손된 자연은 되돌릴 수 있을까.


고울 려(麗) 물 수(水)

말 그대로 곱고 아름다운 물의 도시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대형 리조트가 들어섰다. 이를 본 업자들이 너도나도 펜션을 짓겠다고 나선 덕분에 사방이 공사장이다. 카페며 스파, 와인바, 식당, 노래방, 공원까지 없는 게 없다. 도시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친절하게도 죄다 옮겨놓은 셈이다. 바다 보면서 밥도 먹고 춤도 추고 목욕도 하고 술에도 취해보세요,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즐길 수 있게 이런 걸 마련해봤어요, 궁리하는 모습을 바랐던 건 너무나 바보 같은 기대였을까.


지역 경제도 중요하다

주민들의 편의와 생계를 고려해 일부만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해두었다. 경관법이 적용된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관광산업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제한구역 외 지역을 마음껏 개발하라는 용도는 아니다. 그러나 들릴 리 없다. 법적 규제는 있지만, 효력은 없다. 지금은 당신 땅이지만, 동시에 우리 국토이고, 훗날엔 후손들이 살아갈 환경. 표어에나 나올 법한 문구는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그저 딴세상 소리다. 이쯤 되니 허가를 남발한 시의 잘못인지, 보란 듯이 꼼수를 겨냥해 건물을 짓는 업자들 탓인지, 분간이 가지도 않는다.


이 와중에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를 쓰는 존재들이 있다. 처참한 난개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의 동료가 그렇고, 다섯 시간 달려 내려가 그림을 고민하는 촬영 기자가 그렇다. 혀를 끌끌 차며 무더기로 지어진 펜션에 반감을 표하던 택시 기사님이 그렇고, 난개발을 고발하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그렇다. 그 기사를 본 누군가는 열심히 이곳저곳에 퍼 나르기 작업을 한다. 또 다른 취재물을 얹어 새로운 기사를 쓰기도 한다. 보도될 방송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시청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나 역시 이 아이템을 접하면서 여수가 이미 수년 전부터 난개발 딜레마에 빠져버렸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절벽을 깎고 해안가를 차지해 가며 숙박업소들이 우후죽순 들어선 지 수년. 여러 차례 기사화되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큰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선 흔한 일이니까. 방송이 나간다한들 며칠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이슈에 묻혀버리는 생태계 속에서 꾸준하게 한 지역의 문제에 애정을 쏟는 이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새삼스럽지만 그에게 놀랐다. 그는 여수 난개발을 고발하는 시민기자였다. 저희 내일 여수를 취재하려고 하는데, 혹시 또 가실 예정이 있으실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 그래도 가려던 참이었다는 대답. 하지만 환경운동 건으로 강원도에 갔다가  막 도착해 컨디션이 난조라는 대답. 그러니 조금만 고민해보겠다던 대답. 30분 후 걸려온 전화로 흔쾌히 여수에 동행하겠다고 알려오기까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 당장 우리와 여수에 갑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응하기 어려운 제안이기 때문이다. 350킬로미터 떨어진 여수에 내려가 촬영을 돕는다고 해서 그에게 남는 이익은 없다.


언론은 기시감을 지양한다. 반짝,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때마다 반짝, 하고 등장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운 좋은 타이밍에 마침 거기 있어서 스포트라이트가 닿은 건 아니다. 개발론자들에게 끝없는 홀대와 욕설을 들어가면서도 본인들이 생각하는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그저 제자리에 머물러준 덕분이다.


뭐라도, 라는 시민모임이 있다. 속초시가 개발 추진 중인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만든 모임이다.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과 학생, 외지인 7000여 명이 모여 속초시에 서명서를 전달했다. 영랑호는 동해로 이어지는 자연호수다. 멸종위기종이 살고 있는 생태계다. 멀쩡하게 잘 살아가는 동물들을 시민들에게 보여주겠다며 다리를 설치하고, 산책로를 조성하고, 조류 관찰대를 만들겠다는 게 속초시의 취지다. 거기엔 40억이 들어간다. 자연을 보여주기 위해 자연을 훼손시킨다는 논리가 나에게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갯바위를 탐방하기 위해 시멘트를 들이부어놓은 것과 무엇이 다른 건지. 왜 아무도 여기에 죄책감이란 걸 느끼지 않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단 하나 아는 건 우리가 나무를 보고 산을 오르고 바다의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준 덕분이라는 것.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자연스럽게 살 순 없을까. 자연스럽다는 말은 좋아하면서 왜 그렇게 자연을 못살게 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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