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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05. 2020

쥐 잡는 법

며칠 전 집구석에서 쥐가 나왔다. 산책 다녀온 엄마가 저녁 준비로 부엌에 불을 켜던 찰나 구석에서 빼꼼했던 모양이다. 시골집에 쥐가 등장하는 것이야 흔한 일이라곤 하지만 96년도 이후 첫 출몰인 데다 도깨비도 귀신도 벌레도 무서워하지 않는 엄마가 쥐만큼은 기겁을 한다. 엄마는 쥐띠다.  


퇴근을 앞둔 나에게 아버지가 카톡을 보내왔다. 집에 쥐가 나왔는데, 오는 길에 쥐약 좀 사 오련? 엄마가 몸져눕겠다.


오는 길에 치킨 사 와, 맥주 좀 사 와, 뭐 이런 말은 들어봤어도 쥐약을 사 오라는 주문은 낯설다. 야근이기도 했고, 양손 가득 짐이 있어 마트에 들르지 못하고 귀가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부엌 입구에 선 채 뉴스를 보고 있다. 왜 거기 계시냐 여쭈니 여차하면 잡기 위함이란다. 문이란 문은 다 닫아놓고 자발적 격리 중인 엄마가 유리문 너머로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드물기에 일찍 왔다고 반겨줄 줄 알았던 엄마는 새하얗게 지린 채 넋이 나간 얼굴. 그래... 왔니?


유독 엄마 앞에서만 세 번이나 제모습을 드러냈던 놈은 아버지 설명에 따르면 손바닥만 한 큰 데다 부엌 찬장 이곳저곳을 탐방 중이라 했다. 벽이랑 찬장 사이 아주 좁은 틈이 있는데 그 언저리에 들어갔을 터이니 나오기만 하면 때려죽일 기세다. 목도와 빗자루, 집게가 널브러진 부엌에 들어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구운 연어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더덕 무침을 그릇에 덜어냈다. 그 과정에 어디선가 쥐가 나타난다면 나 역시 기절초풍 혼비백산의 수순을 밟겠지만, 덤덤한 척해보았다. 집안에 감도는 분위기로 가족들은 저마다 암묵적인 역할을 부여받았다. 겁을 내는 역은 엄마, 쥐를 잡을 건 아버지. 나는 동요하지 않고 쥐잡기에 조력하는 역할.


라면 한 젓가락 입에 넣을 때마다 찬장으로 눈이 갔다. 더덕 하나 넣고 서걱서걱 씹으며 어딘가 빠져나왔을지 모를 쥐꼬리를 눈으로 좇았다. 순간 얼굴도 모르는 그 쥐새끼가 참말로 불쌍하다. 어쩌다 우리 집구석에 들어와서 이리도 환영받지 못할까. 때려잡겠다고 검도 칼을 들고 오는 남자와 제 얼굴만 봐도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비명을 지르는 여자가 저한텐 얼마나 무서울지.


다 먹은 그릇을 치우고 설거지를 할 때까지 쥐를 향한 연민은 이어졌다. 거실 티브이에선 스포츠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내 고요해지고 방으로 들어와 한참 책을 읽는데 자꾸 부엌에서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히 나가보니 아버지가 부엌에 서 있다. 어느 한 지점을 응시한 채. 미동도 않고 서 있는 아버지 입에서 난 소리였다.


이놈 시키. 이노무시키.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잠 못 자고 불이란 불은 다 켜놓은 채 부엌에서 보초를 서던 아버지는 급기야 나를 불러 신문지 좀 가져오너라, 하였고 나는 거실 한구석에 재활용으로 내놨던 상자들을 다시 꺼내어 큰 놈만 골라 가져갔다. 쥐가 있는 곳을 파악했으니 조금씩 포위망을 좁혀 놈을 압박한 다음 나오면 잡아버리겠다는 심산인 듯했다. 나는 발 빠른 조수가 되어 상자를 나르고 테이프를 붙여 고정시켰다. 여차하면 깨질만한 도기와 과일을 담았던 대접을 차례로 옮기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세워둔 도마가 넘어지거나 큰소리라도 날라치면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마다 쥐를 향한 적대감이 올라왔다. 네가 감히 우리 집의 평화를 깨뜨려? 오늘 밤 무조건 잡고 본다. 내면의 비장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을 때쯤 제법 그럴싸한 요새가 만들어졌다. 바닥에 뒹굴던 빗자루를 집어 들고 아버지의 뒤에 섰다.


자, 준비됐지.


관등성명이라도 대야 할 것 같은 비장한 목소리. 너는 이제 독 안에 든 쥐야.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살면서 독 안에 든 쥐,라는 말을 살아있는 쥐 앞에서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놈이 숨어있을 구석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가 전자레인지를 살짝 건드리자마자 쥐는 잽싸게 튀어나왔고, 아버지는 허공에 집게를 휘두르며 안돼애, 를 외쳤다.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쥐가 내 앞으로 지나가는 순간 끝장을 내겠다는 심보로 닥치는 대로 빗자루를 갈겼다. 자칫 정말로 쥐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걸까. 아버지는 다시 안돼애, 를 외치며 기진맥진해 있는 쥐를 집게로 건져 올렸다. 쥐에겐 구사일생의 순간이었으리라. 끝까지 이놈 시키, 이노무시키, 중얼거리며 쥐의 생사를 확인한 아버지는 이제 문을 연다, 며 내게 지령을 내렸고 나는 잰걸음으로 거실을 나와 현관문을 열었다. 한참 뒤에야 돌아오길래 왜 그리 시간이 걸렸냐 물어보니 저 멀리 뒷산까지 올라가 쥐를 방생해 주었다고 했다. 이 추운 겨울에 야산에 놓아준다고 하여 방생이 될지 모르겠다만 아버지 마음의 온기만큼은 쥐에게 전해졌길 바랐다.


다음 날 아침 밥상에서 엄마는 살았어? 죽었어? 라며 쥐의 안위를 물어왔다. 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마음 씀씀이가 좋다며 토스트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고, 나는 그런 표현을 덤덤하게 내뱉는 아버지가 좋았다. 엄마랑 나랑 둘밖에 없는데 내가 갓난아기였다면 엄마가 잡았을까?라는 실없는 물음에 당연하지, 대답하는 엄마가 좋았다. 쥐가 깨뜨린 줄로만 알았던 가내 평화도 하룻밤 사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애초에 쥐가 가져온 건 행복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작은 숙제였다. 그러고 보니 경자년이 저물어간다. 살려 보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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