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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17. 2020

고요 속의 지적질

친구네 집들이 갔던 어느 주말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현관 앞 수북하게 쌓인 택배물이었다. 3년 차인 신혼부부. 첫 집도 아니고 웬만한 살림살이는 다 갖춰 놨을 터인데 살짝 의아했다. 집 안에 들어선 순간 의문이 풀렸다. 화이트톤으로 깔맞춤한 인테리어, 은은한 조명이 반짝거리는 자작나무 트리, 보드랍고 폭신폭신한 카펫, 깔끔한 다자인의 스탠드 조명 위로 살짝 얹어놓은 크리스마스 장식물. 주방은 우드톤으로 완성됐고, 조리도구는 차분한 그린 컬러로 어우러져 있었다.


그들의 첫 신혼집이 떠올랐다. 사람 두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평수라며 나를 초대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 뜸을 들였던 작은 집. 수납공간이 단 한 개도 없어 살림살이가 죄다 바닥 위로 나온다며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그마저도 신혼 특유의 풋풋함이라 느껴졌었지만. 당사자들에겐 달랐던 모양이다. 방송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인테리어를 보며 이렇게 꾸미고 살 애들이 그간 그 작은 집을 어떻게 버텨왔나 싶기도 하였다. 


거실에 발을 딛자마자 신랑이 손님용이라며 일회용 슬리퍼를 내주었다. 그마저도 하얀색이다. 화장실은 1층과 2층에 각각 한 개씩 있었는데 타월엔 루돌프가 그려져 있고, 욕실용 슬리퍼며 칫솔 거치대까지 전부 깔맞춤을 해놨다. 주방의 간이 테이블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알록달록한 양초가. 요리 하나가 등장할 때마다 그에 걸맞은 우아한 접시가. 나는 매번 새로운 감탄사를 연발했고 테라스에서 포장마차 분위기를 낼 거라며 배송된 간이 천막을 펼쳤을 땐 감탄도 거의 극에 달했다. 예쁘게 집을 꾸며 친구들을 초대해 야외에서 요리를 해 먹는다는 것.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로망이자 숙원사업이었을 테고, 내 친구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불편한 건 없는지 맛은 있는지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는 부부의 얼굴엔 설렘과 호기심, 조바심과 감격스러움이 차례로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이런 걸 다 어디서 찾았어? 물음에 친구는 짧고 굵게 대답했다. "쿠팡. 다 있어, 쿠팡에." 


장장 1박 2일에 걸친 집들이를 끝마치고 마지막 과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전쟁터로 변해버린 주방 정리였다. 온갖 조리기구들이 총출동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고, 그릇을 하나씩 포개어 설거지만큼은 내가 하겠다 팔을 걷어붙였다. 수세미를 찾으니 신랑이 키친타월같이 생긴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 왔다. 일회용 수세미란다. 쓰고 버릴 수 있어 편한 항균 수세미였지만 폴리프로필렌 재질 플라스틱 성분이었다. 명분상 분리수거가 가능하지만 오염이 심하면 일반쓰레기로 분류되어야 한다. 폐기물 대란을 겪고 있는 요즘 시대에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는 일반쓰레기 못지않게 골칫덩어리지만 말이다. 


설거지를 하는 내내 모든 '편한 것'들에 둘러싸인 이 환경에 약간의 위화감이 올라왔다. 도착한 지 48시간이 되어가도 여전히 현관문에 쌓여있는 택배 꾸러미며 일회용 슬리퍼와 일회용 수세미. 음식물 쓰레기와 휴지, 비닐이 뒤섞인 하나의 쓰레기봉투, 수십 개에 달하는 1리터짜리 플라스틱 생수병들. 이 모든 것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존재하고 사용되고 버려지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질문을 던질 순 없었다. 살림을 합쳐 살아온 시간 동안 부부에겐 나름의 타협이 시간이 있었을 거고, 여러 시행착오가 그들을 뒤흔들어놨을 거고, 나는 그저 하루 그 집에 초대된 손님이었으니까. 


집들이에서 돌아오고 며칠 지나지 않아 주방에서 쓰는 볶음용 웍(깊은 프라이팬)이 필요해져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었다. 짧고 굵었던 친구의 한 마디가 뇌리를 스쳤고 쿠팡을 검색했다. 배달원을 취재하기 위해 쿠팡 플렉스는 가입했어도 쇼핑몰인 쿠팡 자체는 처음인지라 아이디를 만들어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잘 뒤질수록 좋은 물건을 발견할 것'이라던 친구의 말을 조언 삼아 온라인장을 떠도는데, 웬 걸.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거다. 이 요망한 알고리즘은 내가 필요한 건 물론 내가 필요할 것, 필요했던 것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 결제 버튼을 누를라 치면 떡하니 화면으로 등장시켰다. 더 좋은 가격과 더 괜찮은 퀄리티로 무수히 많은 상품들을 끊임없이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욕실에 바디샴푸도 떨어졌고, 얼마 전 스치듯 핸디 청소기가 있으면 좋겠다던 아버지의 한 마디도 생각난다. 묵은 때를 세척하는 강력 세정제 같은 것들도 한 두 개 구비해두면 좋을 것 같고,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게 향이 좋은 섬유유연제를 키로로 구비할 수 있겠다. 라면에 한 스푼 넣어 먹으면 맛있다는 두반장도 하나 쟁여놓고, 아침에 설거지하다가 구멍나버린 고무장갑도 여분으로 구비해둘까......?


결제금액은 순식간에 한자릿수, 두 자릿수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장바구니에 모아놓은 물품들을 다시 하나하나 살펴봐도 마트에 가서 낑낑대며 사 오는 인건비와 가격, 퀄리티를 생각했을 때 쿠팡이 이득이다. 그렇게 또다시 두 시간이 지나갔다. 


쿠팡이 괜히 쿠팡이 아니었다. 차마 양심상 새벽 배송을 신청하지 않았음에도 다음날 오전 현관 앞에 무수히 많은 상자들과 비닐포장들이 쌓여있었다. 내가 출근을 하기도 전에. 전날 밤 자정까지 뒤적뒤적거리던 물건들이. 마법처럼 다음날 현관에 배달된다는 것은. 마법에 가까운 일이었으며 매우 편리하지만 나를 나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수북하게 쌓여버린 비닐포장지를 뜯으며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내며 면봉 하나를 사도 무료로 가장 빠르게 배송해주는 이 시스템이 조금은 괴물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에 그새 적응이 되어버린다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었다. 평소에 대문 앞에 떨어져 있어도 별생각 없이 주워 들고 들어오던 택배인데, 쿠팡에서 온 택배가 마당에 뒹굴고 있으면 화가 났다. 왜 저렇게 배송한 거지. 물건 다 상하면 어떡하지. 완벽한 서비스를 자랑하는 쿠팡이니까. 마치 내가 고용주라도 된 듯 꼬박꼬박 배송 시각과 사진을 휴대폰으로 보고받다 보니 내 물건이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교통체증이 심각해져 늦을 수도 있는 건지, 그 어떤 것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마저 생겼다. 친구네 현관문에 수북하게 쌓여있던 택배 상자들이 이해가 갔음은 물론이요, 생각해보니 친구 부부는 많이 절약한 편이었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었다. 사이트에 가입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스템이 아닌 내가 괴물이 되어있었다. 


채찍만 안 들었지 로마시대 노예 같다는 생각을 했다던 쿠팡 맨. 1시간 일하면 10분의 휴게시간을 갖고 싶다던 쿠팡맨. 하루 3만보를 걸어 다니며 일을 하다 병가를 냈더니 재계약에서 탈락했다던 쿠팡맨. 감시자가 없는 영하 10도짜리 얼음창고에 달랑 장갑하나 지급받고 일한다는 쿠팡맨.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총알배송의 민낯, 쿠팡 발 코로나 피해, 불법 사각지대인 쿠팡 노동 근로환경에 대한 기사를 매일 보고 들으면서도 퇴근하고 집에 가서 쿠팡을 검색하고 있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그럼에도 셧다운 되면 행여나 생필품이 떨어질까 두려워 차마 쿠팡 탈퇴는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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