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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Dec 19. 2020

연말의 다짐


1986년. 사당이 달동네였던 시절. 철거민 가족 3대의 33년을 담은 영화. 124분 동안 머나먼 과거부터 차례로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을 한눈에 보니 영화가 끝날 무렵엔 내 할머니 같고 내 삼촌 같고 내 가족 같다. 인생은 정말 한순간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거머리만치 지독하게도 달라붙어 이들이 좀 살만하다 싶으면 가차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당장 일을 그만둬도 3개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요즘 대학생들이 말한단다. 이들에겐 딱 3일이 한계다. 3일만 일을 못하면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다른 세상 같지?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 너랑 같은 땅덩어리에 어쩌다 다른 집안에서 태어난 동세대 사람들 이야기야.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질문들에 아무 대답도 내놓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가는 사람은 덕주였다. 덕주는 또래이기도 하고, 주변에도 있을 법한 친구였다. 사당동 더하기 22가 개봉했을 때 덕주는 상영하는 매 영화를 다 챙겨보았다고 한다. 선생님, 워낭소리보다 이게 훨씬 재밌어요! 하길래 조은 감독은 진짜 내 영화가 재밌나보다, 했다고. 나중에 알고보니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가 그리워 그걸 다 쫓아다니며 봤던 거라고.
조은 감독님 같은 삶을 산다는 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일 수도 있겠다. 의무라고 받아들이로 했다. 같은 땅덩어리에 살면서 어디까지 모른 척하고 살 수 있겠나. 그럴래야 그럴 수도 없다. <미안해요, 리키>와 <진도>는 보면 볼수록 명작이다. 참 잘 만든 영화들. 주변 사람들한테 열심히 추천 중인데... 과연 누가 봐줄까. 좋은 영화를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것만으로 유대감이 생겨난다는 것. 그들 가운데 나의 가족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함이 벅차오르는 오늘이다. 딱 연말에 하고싶었던 짓을 오늘 원없이 해버렸다. #사당동더하기33 #미안해요리키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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