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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Feb 02. 2021

비결은 여유에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 받는 배드민턴 레슨이 날 웃게 한다. 체육관에 가는 날이면 가니까 좋고, 안 가는 날이면 내일 가니까 좋다. 어제는 레슨 받는데 코치가 정색을 했다. 그마저도 좋다. 마냥 오냐오냐 달래줄 정도로 거리를 두지 않는 거라 받아들였다. 언더를 배우고 있었다. 오른손잡이인 나는 포핸드 언더가 쥐약이다. 오른팔을 왼쪽으로 꺾어 공을 쳐 올리는 백핸드 언더는 그나마 좀 되는 편인데, 이상하게 오른손으로 공을 올릴 때면 국자로 국물 퍼내듯 괴상한 자세가 나온다.


코치는 '급해서' 그런 거라며 전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너무 많이 나오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팔을 더 뻗고 나오면 자연스러울 거다, 몇 번 너그럽게 타이르다 10분째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는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땀 닦아내며 가빠진 호흡 가다듬으며 콕 모아주는 밀대가 있는 벽으로 걸어가면 대게는 코치가 뒤에서 다가온다. 총무님, (그렇다 나는 언더를 못 치는 레슨 총무씩이나 된다) 오늘 컨디션이 저조하신 거죠? 총무님, 오늘 레슨은 어떠셨어요? 총무님, 총무님, 총무님... 하던 그가 어쩐 일인지 어제는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셔틀콕을 하나하나 줍고 있으니 그제야 다가와 같이 쭈그리고 앉는다. 총무님, 언더는요. 상대편 못 치는 사람한테 가장 잰틀 하게 공을 높이 올려주는 거라 생각하시면 돼요.


기가 막힌 설명이었다. 내가 언더를 준비된 자세로 못 받는 건 공을 받지 못할 까봐 생기는 다급함이 원인이었고, 그걸 모르는 바도 아닌데 다급하게 뛰어가는 건 '천천히 가야 한다'는 주문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배려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여유 있게 칠 수 있도록 공을 높이 올려주는 게 맞는 것이고 동시에 나 또한 그 공이 떨어지기까지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유였다. 키워드는 여유였던 것 같다. 내 밥그릇 챙기기에도 버거운 자리에서 사람은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고, 마음도 몸도 앞서기 마련인데 협업자가 생기고, 나를 바라보는 후배가 생기고, 내 경력으로 커버해야 할 대상이 생기면 없던 여유 또한 생긴다. 비단 배드민턴 기술인 언더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이래서 좋아한다.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젖어들 법한 연차. 익숙하게 쳇바퀴 굴리듯 돌아가는 업무에 적응한 나의 마음가짐이 코트 위에선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구기종목 가운데 공이 가장 빠른, 그래서 순간 착지력이 정말 중요한, 매 순간 눈동자를 굴리며 허공을 가르는 작디작은 콕을 쫓아야 하는 배드민턴이라서 참 좋다.


내 관절이 견뎌내는 날까지, 온전한 상태로 공을 쫓아다닐 수 있을 때까지, 아마도 신명 나게 체육관을 다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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