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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Sep 24. 2021

눈치와 '거시기'

당신의 눈동자를 인식해서 디스플레이가 반응합니다.
아무것도 조작하지 마세요.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동안,
화면은 꺼지지 않습니다.


갤럭시 S4가 등장했을 때, 세상은 놀랐습니다.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페이지를 내린다고? 시선을 돌리면 영상이 멈춘다고? 손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한다며 '당신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휴대전화'라는 카피 문구를 달고 나왔죠.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기능. 적절한 타이밍에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기능. 휴대전화로 이게 가능하다니 기계치고 꽤나 똑똑한 녀석인 셈이죠. 편리함은 인간이 갈망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가 봅니다. 기술은 인간이 좇는 편리함을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날로 발전해가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말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에 열광하는 걸까요?


원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intention-reading skills)을 갖추고 태어났습니다(Tomasello, 2003). 세상에 나온 지 9개월 된 아가도 '내가 의도를 담아서 행동하면 상대방이 이해할 것'이라는 걸 안답니다. 아기가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어요. 엄마한테 봐달라는 이야기죠. 내가 '봐 달라고' 팔을 저으면 엄마가 '알아줄' 것이라는 걸 아기가 인지한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배우지 않고도 갖췄다는 점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지죠.


여기서 더 나아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단계에 이르면 '반복되는 현상'과 그 현상 사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는 능력(pattern-finding skills)이 생겨납니다. 아기가 손을 휘저을 때마다 엄마가 방긋 웃으며 "우리 아가, 배고프구나?" 젖병을 물려준다고 가정해볼까요. 그 행위가 반복될수록 아기는 '손 휘젓기'를 하면 '맛있는 걸 먹는다'라는 패턴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패턴이 쌓여가면서 우리가 속한 문화에 걸맞은 의사표현방식을 터득해나가는 겁니다. 그 과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주는 게 있죠. 바로 '언어'입니다.


언어는 우리의 마음이나 기분, 어떠한 정보를 공유할 때 사용하죠. 그런데 모든 걸 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때론 언어로 표현되지 않지만, 맥락에 숨은 의도를 찾아내야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언어는 늘 한계를 둡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CM송, 아실까요? 초코파이 광고였죠.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말과 함께 초코파이를 쓱 내미는, 우리 문화의 정(情). 우리는 아마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것에 열광하는 민족인가 봅니다. 이유가 뭘까요? 왜 언어로 모든 걸 표현하지 않는 걸까요?




PublicDomainPictures



언어를 주고받는 데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기능화자(話者)의 관계성을 대변하는 기능이에요. 여기서 화자란, 말하고 듣는 사람을 뜻합니다. 정보전달과 관계성 가운데 어느 쪽을 중시하는지는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Scollon and scollon, 1995).  서양 문화권에선 화자의 관계성보다 정보전달 기능에 비중을 둡니다.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문화권은 관계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회 초년생이 겪는다는 통과의례, 압존법을 예로 들어볼게요. 사장이 부장을 찾는 상황입니다. 말단사원인 저에게 질문이 날아옵니다. "김 부장 어디 갔니?" 여기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A 김 부장님, 미팅 가셨는데, 1시간 후에 돌아오십니다.

B 김 부장, 미팅 중이라 1시간 후에 돌아옵니다.


압존법대로 대답하면 A가 되겠죠. 사장도 부장도 저에게는 높임말의 대상이지만, 이 상황에서 최고 상위자는 사장이니까 대화 속에선 부장을 낮추는 겁니다. 요즘은 수평적 호칭제를 도입해서 직위와 상관없이 '님'을 붙여서 부르는 회사가 늘어났죠.


그렇다면 일본의 압존법은 어떤 식일까요?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외부 거래처에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김 부장을 찾는 전화예요. 김 부장은 저에게 상사입니다. "OO무역회사 야마모토인데, 김 부장 자리에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A 지금 김 부장 자리를 비웠는데, 메모 남겨드릴까요?

B 지금 김 부장님 자리를 비우셨는데, 메모 남겨드릴까요?


우리는 보통 B를 선택하죠. 야마모토가 누군지 모르니까요. 일본에서는 A가 맞는 표현입니다. 야마모토가 거래처 말단사원이든 과장이든 아예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어요. 김 부장이 나에겐 윗사람이지만, 상대방에겐 아닐 수 있죠. 이때 미우치(身内) 문화가 등장합니다. 미우치(身内)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이 '몸 안' 그러니까 가족, 집안, 내가 속한 집단, 무리를 의미해요. 개인 대 개인이 아닌 '바깥사람 VS 우리 회사'라는 입장으로만 견주는 겁니다. 김 부장과 나는 각각의 개인이 아니라 미우치(身内)라는 집단으로 묶여버려요. 비슷해 보이지만, 기준을 다르게 두는 거지요. 


한국이랑 일본은 이렇듯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문제는 관계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권일수록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에요.  


조금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볼게요. 지인이 전라도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촬영을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바로 앞에서 들을 땐 내용이 다 이해가 가더래요. 서울로 돌아와서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는데, 문장이 좀 길길래 자르고 잘라냈더니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남았답니다.


거시기 뭐시여, 거시기가 시방 거시기자녀. 긍게 좀 거시기한 거지.


'그 양반이 나이가 들어서 움직이는 게 힘들잖아.'라는 뜻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시나요? 이 문장을 구글 번역기로 돌려보았습니다.   


What's wrong with a dick, a dick is a dick child. It's kind of like saying it's a little cocky.


잘못 사용하면 큰일 날 단어가 등장해버리네요. 비문이 되어버리니 전달도 어려워집니다. 지인이 '거시기'로 가득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첫 번째 '거시기'와 두 번째 '거시기'가 다른 의미라는 걸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요. 지역 특색인 사투리, 그곳의 문화, 두 사람이 공유하는 상황을 서로가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기에 굳이 명확하게 표현할 이유도 없었던 겁니다. 우리 문화에 익숙한 사람은 공유가 가능하고, 때론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하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곤란한 화법이 되겠죠. 그 비결이 뭘까요? 바로 '눈치'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을 눈치라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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