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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Sep 26. 2021

'일본식 친절'의 기술, 그 비결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고깃집에서 6년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때 논문 주제가 '눈치'였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고깃집, 눈치 천지인 거예요. 손님을 상대로 물건을 사고파는 곳만큼 눈치가 중요한 공간이 또 있을까요. 눈치 연구엔 적격인 공간이었지요. 눈치 빠른 친구가 일도 잘한다고 하죠. 저는 살면서 눈치가 꽤 빠른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고깃집에서 시행착오를 참 많이 겪었습니다. 한국식 눈치와 일본식 눈치는 다른 범주에 있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지요.


일본은 접객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입니다. 접객(接客)이란 '손님을 대하는 방법',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네요. 여행 다녀오신 분들이 하나같이 물어옵니다. "일본은 식당이   그렇게 친절한 거야?" 물론 가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일본 가게들이 손님을 대하는 방법은 친절하고 정중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되어있습니다.


마법의 단어 '눈치'

눈치는 일본어로 뭐라고 할까요? 딱 이거다, 할만한 단어를 골라내기가 어렵습니다.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일본인 친구가 그래요. 한국어는 참 재미있는 게 '눈치'라는 단어 하나에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대요. 일본어는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단어가 다 달라요. 사실은 이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우리는 '눈치' 하면 딱 떠오르는 광경이 있죠. 누군가의 얼굴. 늦게 들어가서 보는 아버지의 눈치, 실수해서 보이는 아내의 눈치, 곁눈질로 살피는 상사의 눈치. 어떤 상황이든 특정 대상이 존재합니다.

 

'눈치'가 담고 있는 다양한 뜻을 어느 정도 포용할 수 있는 단어를 여기서는 '삿시(察し)'로 정해보았습니다. '살피다'는 뜻의 명사로 '관찰하다' 할 때 쓰는 한자, '살필 찰(察)'자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을 잽싸게 살피는 일. '고객이 왕'이라는 일본식 접객문화 역시 이 '살핌'에 기반을 둔답니다.


일본식 친절함은 어디서 나올까?

정장 차림의 샐러리맨이 점심시간에 고깃집에 들어와요. 이 순간부터 머릿속에 시나리오가 그려집니다. 종이로 된 앞치마를 같이 내어 가야겠다, 라던가 연기가 덜 닿는 자리로 안내해야겠다, 라는 식이에요. 직장인은 점심시간이 한정되어있죠. 무슨 일이 있어도 요리를 빨리 내 가는 게 기본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랑 별반 다름없습니다.


샐러리맨이 자리에 앉고 주문을 받아요. 그다음부터 소소한 '살핌'이 시작됩니다. 물이 얼마 안 남아있으면 쓱 다가가 물을 채워 넣고요. 하얀 셔츠 소매를 조심스럽게 걷어 올리면 일회용 앞치마를 쓱 내밀어요. "괜찮으시면 사용하세요(宜しかったらどうぞ)"라는 말을 건넵니다. 이 문장은 굉장히 많이 쓰이는 접객 용어인데요. 상투어(決まり文句)라고 합니다. 언제든 누구를 대상으로든 (상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우동을 시켰는데 쇠젓가락이라 면이 자꾸 미끄러져요. 아등바등하는 손님 앞에 나무젓가락을 쓱 내밉니다. 다 먹고 비워낸 우동 그릇을 테이블 바깥쪽으로 살짝 밀어내면 다가가서 빈 그릇을 치워도 괜찮은지 물어봅니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면 재떨이를 또 쓱 내미는 식이에요. 


언뜻 한국이랑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는 굳이 앞치마를 내주지 않아도, 물 잔의 물이 비어있어도, 빈 그릇을 치우지 않아도, 그 가게 서비스가 나쁘다, 고 말하진 않습니다. 바쁘면 못 볼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죠. 일본에서 접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게라면 저 행위들은 필수입니다. 안 하면 지적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못 볼 수도 있지 뭐, 빈 그릇 좀 놔둘 수도 있지 뭐, 라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너는 직원이잖아. 어떻게 그걸 못할 수가 있지?"라는 지적을 들어요. 덕분에 저도 많이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손님이 절대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 모든 건 손님이 '요구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기요, 물 좀 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물통을 가져오는 직원에게 "저 친구 참 눈치가 빨라." 하진 않잖아요. 명확한 언어 표현이 없을 때야말로 눈치가 발동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바로 '타이밍'입니다.      


흐름을 깨지 않는 '타이밍'

처음엔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어요. 어느 날 점장이 저에게 그래요.


"손님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를 하나의 큰 흐름이라고 생각해봐. 들어와서 자리에 앉고, 음식을 주문하고, 요리가 등장하고, 계산하고 나갈 때까지. 네 역할은 그 흐름을 깨지 않는 거야. 딱 한 템포만 빠르게 다가가면 돼."


흐름을 깨지 않는 것. 그건 손님이 나에게 말로 요구하지 않을 거란 걸 의미합니다. 동시에 손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단서가 된다는 뜻이죠. 물이 반쯤 남아있는 유리컵, 화장실을 찾는 듯한 눈치, 조심스럽게 소매를 걷어 올리는 몸짓. 상대방이 무의식적으로 보내오는 시그널을 바로바로 캐치하고 대응하는 게 저의 역할이었던 겁니다.


일본의 접객은 이렇듯 '장(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점장이 말한 '흐름'이랑 같은 맥락이겠죠. 개개인의 취향이나 행동이 단서가 되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접객의 장(場)'이라는 하나의 테두리예요. 개인의 비위를 맞추기보다 가게의 직원으로서 수행할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내는 겁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휴대폰을 본다거나 동료와 수다를 떠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일단 타임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저의 존재는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겁니다. 가게라는 공간에서 손님이 식사를 하고 문 밖을 나서기까지, 그 흐름을 깨지 않게 만드는 역할뿐이에요. 각각의 역할이 뚜렷하고,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지향점 또한 뚜렷합니다.


눈치는 신체의 일부인 '눈'을 뜻하죠. '치'는 계산 값(値) 혹은 '한쪽으로 치우친 모양'을 뜻합니다. '장(場)'이나 '흐름'보다 훨씬 구체적인 느낌이죠. '눈치 없다'는 말은 일본어로 '공기를 못 읽는다(空気読めない)'라고 표현해요. 공기라니요. 공기를 어떻게 읽습니까. 상당히 추상적이고, 광활한 느낌이죠.


공기란 '장(場)'이나 '흐름'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 공간의 맥락을 뜻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매뉴얼로 만들기 쉬워요. 제가 일하던 고깃집에도 커뮤니케이션 노트가 있었는데요. 해야 하는 모든 행위가 다 적혀있습니다. 기본적인 룰을 공유하고, 손님 개개인의 취향이 추가돼요. 아무개 손님이 오면 쇠젓가락 대신 나무젓가락을 둘 것, 아무개 손님은 창가 자리 선호, 아무개 손님은 식후 따뜻한 보리차 필수, 라는 식입니다. 출근해서 노트를 확인하고, 적힌 대로만 해내면 모두가 '좋은 접객'을 하는 직원이 되고, 그 가게는 '접객이 좋은 가게'가 되어 갑니다.  


MBTI 성향 테스트 한 번쯤 들어보셨죠. 딱 들어맞는 경우도 있지만, 어? 난 다 맞지 않는데? 싶은 부분도 있을 겁니다. 사람마다 성향도 취향도 각자 다른 법인데, 딱 맞는다는 게 쉽지는 않죠. 하물며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사회, 공유하는 문화를 어떻게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이 있다'라고 정리를 해볼 순 있겠지요. 문화를 이해할 때도, 교류를 이어갈 때도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세운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의 '눈치' : 개인(인물, 특정 대상)에 비중을 더 두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살핌' : 개인보다 분위기, 맥락, 장(場)에 초점을 더 맞추는 경향이 있다     


실생활에서 등장하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사례별로 소개할 거예요. 이 가설이 맞는지 하나씩 살펴볼 생각입니다. 개중엔 가설에서 심하게 엇나간 사례가 나올 수도 있겠죠. 그러면 그 부분은 그런가 보다, 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서 조금 오래 살아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수없이 들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일본은 진짜 그래? 일본 사람들은 정말 겉과 속이 달라? 일본은 이럴 때 어때?'.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다는 말로 얼버무려왔어요.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살았던 시간만큼 귀국하고 나서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대도 그만큼 변해왔지만 오랫동안 묵혀둔 고민의 답을 찾아보려 합니다. '눈치'를 비교함으로써 그간 수없이 들어온 질문들에 작은 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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