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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Sep 26. 2021

슬기로운 회사생활, '눈치'의 쓸모란?

하루는 팔에 작은 흉터가 생겼어요. 난생처음 보는 모양이었는데 엄마도 이런 상처는 처음 본다며 한 마디 건네 온다는 게...


"듣보잡이네."     


상상도 못 한 대답이었습니다. 되물었죠. "듣보잡?" 엄마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응, 딱 듣보잡이네." 어디선가 듣보잡의 의미를 잘못 배운 듯했습니다. 엄마, 듣보잡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을 뜻하는 단어인데... 차근차근 설명해드리니 엄마가 당황합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딱 이 부분까지만 입력됐던 모양이에요.      


아버지는 요즘 '월클'이라는 단어를 애용합니다. '월드클래스(world class)'의 줄임말이죠.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사람을 지칭할 때 쓰이는데요. 서핑하러 가서 보드 들고 찍은 사진을 보내면 "사진만 보면 월클 선수네."라고 한다거나 "아무개 인터뷰 참 좋더라, 월클이더라."라는 식입니다. 막상 저는 월클이라는 단어를 발음해서 말해본 기억도, 글자로 써본 기억도 없어서요. 부모님이 신조어를 터득하는 방식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듣보잡'이나 '월클' 10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입니다. '돈으로 혼쭐을 내주겠다'라는 의미로 '돈쭐'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도 최근이죠. '돈쭐'이라는 단어는 MZ세대가 주도하는 소비 트렌드라고도 불리는데요. 아프간 사람들을 품어준 진천이 한국의 품격을 보여줬다며 '돈쭐 내러 가자'던가 어려운 가정을 도운 피자집 사장님을 '돈쭐 내야겠다',  말하는 식입니다. 이처럼 언어는 시대와 문화를 끊임없이 반영하고 있어요. 살아있죠.


눈치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칫밥, 눈치껏, 눈치 좀 살펴라, 눈치 보지 좀 마, 눈치가 왜 이렇게 없냐. 눈치를 둘러싼 표현이 참 많죠. 그 표현 하나하나에 우리가 눈치를 대하는 자세, 문화,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 이럴 때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일본에선 뭐라고 말하는지, 언어를 가지고 비교하는 건 문화를 들여다볼 때 아주 좋은 도구가 되어주는데요. 그걸 인지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 관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눈을 뜬 순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매 순간 '인지'라는 걸 합니다. 노트북을 보고, 글자를 읽고, 커피를 시키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저 사람이 동료인지 부장인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이죠. 어제랑 다르게 오늘은 파란색 옷을 입고 왔구나. 헤어 스타일이 짧게 변했구나.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세상을 인지합니다.

     

평소랑 똑같이 농담을 던졌는데 표정이 어둡다면 "무슨 일 있어?" 물어보게 되는 것. 같이 식사를 하는데 유독 오이에만 손이 안 가는 상대방을 보며 '오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지레짐작해보는 것. 모든 게 다 인지 과정의 결과물이에요.           


이런 과정이 쌓이면 경험이라는 데이터가 생기죠. 지식과 기억량이 늘어납니다. 최종적으로 우리가 속한 문화랑 연결시켜서 사회적 개념, 상식, 사고로 발전하게 되지요. 그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언어이고요. 인지언어학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도구로 역추적'한다는 입장입니다. 신체로 사람을 알아가는 건 의학, 기술로 사람을 파악하는 건 과학, 정신세계를 탐구해서 인간을 알아가는 게 심리학이라면 인지언어학은 그 재료가 '말'인 셈이죠.



"저기, 자네. 볼펜 소리 좀 그만 내주겠나?"

사무실에 새로 들어온 인턴 친구가 볼펜을 딸깍거려요. 처음엔 몇 번 하다 말겠지, 했는데 그 소리가 10분, 20분 동안 이어집니다. 부장이 힐끔 보더니 헛기침을 크게 에헴- 합니다. 그러면 부장과 인턴 사이에 앉은 우리는 눈동자가 막 돌아가기 시작하죠. 눈치를 보는 겁니다.


그 상황에서 부장한테 "혹시 감기 걸리셨어요?"라고 묻진 않을 거예요. 헛기침이 생리현상 때문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신호라는 걸 암묵적으로 느끼지요. 볼펜 소리가 신경 쓰이는구나, 추측합니다. 그렇다고 인턴한테 큰소리로 "저기, 자네. 볼펜 소리 좀 그만 내주겠나?" 할 수도 없어요. 부장이 헛기침으로 표현한 건 눈치껏 알아차리라는 암묵적 시그널인데, 대놓고 말하면 서로가 민망해질 수 있겠죠. 부장이 "에이, 뭘 또 그걸 말로 하고 그래." 하면 저 또한 민망해지겠죠. 무의식적으로 잠깐 나온 습관일 텐데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인턴을 민망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렇듯 눈치가 발동하는 순간은 선뜻 말이나 행동으로 나서기 어려운 영역일 때가 많습니다. 부장과 나의 관계, 인턴 친구의 감정, 부장의 기분, 다른 동료들과 나누는 눈치, 가 끊임없이 우리를 맴돌죠. 우리의 마음과 행동, 문화가 연결되어있다는 방증입니다.     


부장이 자리를 뜨고, 인턴 친구에게 슬쩍 언질을 준다면 그제야 이해할 겁니다. '아, 부장이 헛기침한 게 나 때문이었구나.' 그 후로 부장의 헛기침은 인턴 친구에게 하나의 신호로 작용하게 되겠죠. 만약 그 후로 인턴 친구가 또다시 볼펜 소리를 내고, 부장은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고, 기침소리를 들은 인턴이 "어머, 부장님! 감기 걸리셨구나. 환절기니까 조심하세요." 해맑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매우 높은 확률로 그를 '눈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험치가 없는 사람이거나 수직관계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황할 겁니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예측하기 어렵잖아요. 인턴 친구가 부장의 헛기침을 인지하지 못한 건 그 친구의 과실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통은, 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게 어떤 상황에서든 조심스럽기 마련이지요. 저마다 개성을 가진 만큼 사물을 받아들이는 방법 또한 다 다른 것이니까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평균, 범주, 기준, 경향이 존재한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행동이나 언어에 문화가 깊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일 거고요.


언어로 표현되지 않을 때, 눈치가 발동한다면서 어떻게 언어를 토대로 눈치 문화를 알아낸다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여러분은 정말 예리하신 겁니다. 저도 그 부분이 가장 고민이었거든요. 헛기침을 한다는 건 눈치를 준다는 뜻인데, 헛기침은 언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생각을 뒤집어 보았어요. 눈치라는 행위 자체는 언어가 아니지만, 눈치를 표현하는 언어가 있다면 그건 그만큼 눈치의 성질을 명확하게 담아냈다는 방증이다, 라는 전제를 둔 거죠. 낮은 확률이지만, 저는 그쪽에 승부수를 걸었답니다.       


 "넌 정말 눈치가 없더라."

"넌 정말 눈치가 없더라"라고 말하면 눈치가 마치 내가 가진 어떤 소유물을 지칭하는 느낌이 들죠. 돈이 없다, 집이 없다, 휴대폰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마치 내가 실물로 보여줄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죠. 실제로 우리는 눈치를 하나의 능력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반면 일본어로 "넌 정말 눈치가 없더라"는 "너는 참 공기를 못 읽는다(空気読めないね)."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문장에서는 '공기'가 중심이 됩니다. 같은 상황을 두고 '눈치가 있다, 없다'랑 '공기를 읽다, 못 읽다'는 엄연히 다른 구조이지요. 있어야 할 '눈치'와 읽어야 할 '공기'.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개인의 능력 VS 사회 분위기>라는 초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어떤가요. 조금은 공감하실까요?


우리나라에서 눈치라는 건 '개인이 갖춘 스킬, 장점, 능력, 센스, 감각'이란다면 일본에서는 '이 집단에, 이 공간에, 이 사회에 속해있다면 당연히 파악해야 하는 암묵적인 룰'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개개인에 초점이 맞춰질수록 한국식 눈치는 훨씬 방대한 양을 포함한다는 뜻이 되겠죠. 이걸 어떻게 다 갖추고 사느냐. 우리는 5000년 동안 눈치껏 잘 살아왔습니다. 지금쯤이면 DNA에 스며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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