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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승민 Sep 28. 2021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 갓 들어온 신병에게 “어디에서 왔어?”라고 질문하는 고참에게 “서울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하면 “서울이 다 너네 집이야?”라는 말이 돌아온다. 여기에 대단한 가해는 없다. 하지만 그 뒤에 다시 “어디에서 왔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정말 바보 같은 대답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집 주소까지 빠르게 읊어대는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에 대해 위근우 기자가 적은 칼럼 중 인상적이었던 대목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인용해 군 폭력을 묘사한 부분이었는데요.


'엄청난 악마성과 물리력 없이 한 줌의 권력과 장난기만으로도 한 성인의 주체성과 자존감을 순식간에 구겨버릴 수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병역 미필자인 저에게도 왠지 모르게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습니다. 어쩌면 크고 작은 형태로 우리 사회에 녹아내린 권력 화법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고요.

   

언제부턴가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대답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저보다 연배가 높거나 수직관계에 놓인 상사일 경우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한 번에 말하는 연습을 해봐."     

어렸을 때 엄마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기도 했어요. 되묻게 만드는 말 습관은 좋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딸 : 엄마, 나갔다 올게요.

엄마 : 어디 가는데?

딸 : 친구 만나러요.

엄마 : 친구 누구?

딸 : 지영이요.

엄마 : 밥 먹고 들어오니?

딸 : 그럴 것 같아요.     


상냥하게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딸은 아니었나 봅니다. 애초에 '엄마, 지영이랑 저녁 먹고 들어올게요.' 한 문장이면 서로가 편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어떻게 대답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습니다. 사소하지만, 대화법만으로도 그 사람의 성격, 일의 능률까지 드러나기 마련이지요.      


선배가 내일 촬영 여부를 확인하는데, 아직 섭외는 안 된 상황입니다.


선배 : 내일 촬영 섭외됐니?     

A : 아까 전화를 했는데요, 계속 안 받다가 방금 받았는데,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합니다.

B : 아니요. 아직입니다.

C : 담당자가 없어서 보류 중이라 다른 곳도 알아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데요. B의 경우엔 되묻게 될 확률이 비교적 높습니다. 왜 아직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 플랜 B는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A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C는 비교적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더 좋은 표현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소 대화를 어떻게 나눌까요? 질의응답에도 정답이 있을까요? 저만 가진 의문은 아니었나 봅니다. 대화에도 원칙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 있어요. 영국의 언어철학자 폴 그라이스입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땐 거기에 '발설된 말(이미 바깥으로 나온 말)'과 '함의된 것(말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 이 두 가지가 존재한다는 입장이에요. 이해를 돕기 위해 <'여자들의 언어' 해석하는 법>이라는 기사에 등장했던 이미지를 몇 장 가져와봤습니다(한국일보 2014.10.20).


      


연애 스타일이나 화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만,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는 모양입니다. '연애 경험이 있는 남자라면 한 번쯤은 여자 친구가 이렇게 하라고 해서 했다가 애 먹은 적, 낭패 본 적이 분명 있을 것이다'라고 전제를 두면서 소개한 사례들인데요. 다소 이분법적인 사례지만, 말에는 함축된 의미가 있다고 전제를 둔다는 가설은 이런 사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Grice’s Theory of Implicature).


이웃집 할머니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면 아이는 그 행위를 '안녕'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죠. 처음 만난 사람에게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면 초면인 상대방도 똑같이 답례합니다. 손을 흔들거나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이 일종의 기호로 작용하는 건데요. 서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다에 나간 상태에서 해변에 있는 친구한테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면 안전요원은 구해달라는 뜻으로 착각한답니다. 손을 흔드는 행위가 '안녕~'을 뜻하는 유일무이한 기호는 아니었던 거죠. 이렇게 집단이나 개인 사이에 공유되는 약속(intersubjectivity)을 우리는 사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라이스는 사람들이 이 약속을 선호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람들이 대화할 때 언어로 모든 걸 섬세하게 표현하기보다 서로 알고 있을 법한 관습적인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관습은 문화를 대변하죠. 각기 다른 관습이나 문화를 비교하려면 가장 기본이 되는 틀을 만들어놔야 하는데요. 이 틀을 '회화의 격률(Conversational Maxims)'이라고 부릅니다. 대화할 땐 적어도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뜻에서 4가지 카테고리를 만들었어요.      


질(Maxim of quality)

진실이라고 믿고 확실한 증거를 말한다      


양(Maxim of quantity)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필요 이하, 이상의 정보는 제공해선 안 된다     


관련성(Maxim of relevance)

지금 주고받는 것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말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전달할 필요가 없다     


방법(Maxim of manner)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피한다     


어떠신가요. 평소에 이렇게 대화하시나요? 무슨 말인가 싶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들입니다.     


양치기 소년은 첫 번째 원칙을 어기고 대가를 치렀죠. 피노키오도 이걸 어겨서 코가 늘어났습니다. 필요 이상의 정보를 쏟아내는 사람에게 투머치 토커(too much talker), 티엠아이(TMI)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건 그들이 두 번째 원칙을 어겼다고 판단할 때겠죠. 동문서답은 세 번째 원칙을 어긴 상황에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원칙을 위배하는 건 다 잘못된 대화법일까요?

    

연애 초반에 썸 타는 사이를 상상해봅시다. 처음 본 날부터 마음을 표현한답시고 다짜고짜 고백합니다. "나는 오늘 밤, 당신을 원해! 지금 당장 보고 싶어. 어서!" 상대가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겠죠. 표현한 사람은 질(Maxim of quality)의 원칙에 충실한 것뿐이지만요. 반면 아리송한 표현을 되레 즐기는 취향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연애하던 시절 이야긴데요. 바닷가에 놀러 가서 아버지가 엄마한테 그랬대요. "우린 좋은 지아비, 지어미가  거야." 결혼하자는 뜻이었겠죠. 엄마도 그렇게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몇십  살고 아버지한테 물어보니 "딱히 프러포즈는 아니었다."라고 대답하더래요. 의도가 다분하면서도 모호한 화법이죠. 엄마가 착각해준 덕분에 제가 태어난 셈이니 저는 찬성입니다만, 엄밀히 따지면 아버지는  번째 원칙을 어긴 셈입니다.      


이처럼 함축적인 표현은 상대방이 알아줄 거란 전제가 있다면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I love you를 일본어로 옮기는 게 부끄러웠던 나쓰메 소세키가 고민 끝에 "달이 참 밝네요."로 번역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공유한 사이라면 사랑의 언어로 주고받을 수 있겠죠. "달 봤어요? 오늘 밤 달이 밝아요(부끄러워함)." 네, 유독 (뜸 들이고) 밝네요(흐뭇)." 까르르까르르 하면서요.      


호감을 표현한답시고 "아무개 씨, 오늘 밤 달이 참 밝아요." 했다가 "달은 저지대랑 고지대로 구분되는데요. 저지대는 현무암질로 된 용암 대지라 밝다고 말하는 건 과학적으론 틀린 표현입니다."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거죠.

     

어겼을 때 느끼는 스릴이 있습니다. 함축된 의도를 표현할 때도 있고요. 알쏭달쏭하게 만들어 그 상황을 즐기고 싶을 때도 있겠죠. 대화를 나누기 싫은 사람에게 일부러 단답형으로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문화에서 공유되는 약속 때문에 이 원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일까요. 그라이스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 원칙을 언제, 어떻게 '위배하는지'에도 주목합니다. 걸려 넘어지라고 덫을 걸어놓은 느낌인데요. 그래야 이 원칙을 잣대삼아 어떻게 엇나갔는지 '문화의 다름'을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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