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맛을 처음 알게 된 건 일본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입니다. 일 끝나고 서버(맥주 따르는 기계) 청소할 때 점장이 생맥주를 한 잔씩 돌렸거든요. 저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오렌지주스 같은 걸 마셨죠. 그런데 주방장이며 아르바이트생이며 맥주를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예요. 입술에 묻은 하얀 거품을 소매로 쓰윽 닦아내면서 꼭 '캬아-' 하는 감탄사를 내는데,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저런 소리가 나올까 늘 궁금했더랬죠.
한여름의 도쿄는 워낙 습하기도 하고, 가게가 3층 건물이라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피크타임이 끝날 때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곤 했습니다. 매출이 역대급으로 높았던 날, 그날은 왠지 맥주가 당기더라고요. 오늘이다. 오늘은 맥주라는 걸 마셔봐야겠다, 했죠. 마셨습니다. 와, 이맛이더군요. 톡 쏘는 탄산과 입 안 가득 맴도는 고소한 풍미. 깔끔한 뒷맛. 송송 맺힌 땀방울들이 맥주 한 모금에 사악 증발해버리는 듯한 개운함. 일 끝나고 동료들과 가벼운 술자리를 즐기게 된 건 그즈음부터였습니다.
어느 날은 맥주집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갈만한 곳을 찾고 있었어요. 그때 멤버가 같이 일하는 여자 동료 대여섯 명이랑 주방장 그리고 저였습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저희에게 주방장은 타향살이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죠. 40대 후반인데도 노안인 탓에 환갑은 한참 넘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요. 백발의 남성과 깔깔거리는 여대생들이 뭉쳐 다니니 20대 남자 둘이 저희를 힐끔 보곤 한 마디 던집니다.
"나이 먹고 저게 뭐하는 짓이야. 여자랑 술 한 번 먹으려고."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킥킥대더군요. 취해서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주방장 귀엔 꽤나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지나가던 청년을 잡아 세우고는 방금 뭐라고 한 거냐, 물었죠.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왜? 창피하냐? 틀린 말 아니지 않냐, 술 마시려고 여자애들 꼬시는 거 아니냐."라고 말이죠. 같은 가게에서 일하는 동료들이라고 제아무리 설명한들 귓등으로도 안 듣더라고요. 어떤 표정이었냐면요.
주방장이 기분 나쁠만했죠. 아시겠지만, 일본어에는 이렇다 할만한 욕이 별로 없어요. 찾아보면야 심한 욕이 있겠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듣기 힘듭니다.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각종 동물에 그 새끼들까지 소환됐겠지만요. 주방장과 청년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언쟁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50대 주방장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시비야, 이 바보(バカ)야."
20대 지나가던 청년 "뭐래는 거야. 멍청이(アホ) 같으니라고."
50대 주방장 "뭐? 멍청이? 꼬맹이 주제에(ガキのくせに) 멍청이?"
20대 지나가던 청년 "당신 대학 나왔어? 나 게이오대학 나왔어."
게이오는 일본 명문 사립대입니다. 맥락 없는 게이오의 등장에 터진 웃음을 애써 참는 저완 달리, 같이 일하는 친구들은 발을 동동 굴러요. 싸움 난다며 팔을 당기고 끌고 했죠. 점점 싸움도 잦아든다 싶었는데요. 청년이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주방장이 그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겁니다.
"인마, 너는 게이오의 수치(恥)야!"
드라마 대사인 줄 알았지 뭡니까. 신기했던 건 20대 청년의 반응이었어요. 그런 심한 욕은 난생처음 듣는다는 듯, 매우 흥분한 표정으로 주방장에게 달려듭니다.
"뭐? 수치? 내가 왜 수치야!"
그렇게 둘의 몸싸움이 시작됐습니다. 인근 파출소 경찰이 출동해서야 일단락을 지었다는 후문이지요.
웃자고 적은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저에겐 신선한 교훈이었어요. 일본에서 수치(恥)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참고로 야쿠자가 등장하는 일본 영화에 나오는 욕설 섞인 대사는 일상생활에선 거의 들을 일이 없습니다.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에서 서구문화를 '죄의 문화'로 일본의 문화를 '수치의 문화'로 구분 지었었는데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로 언급될 만큼 '수치(恥)'란 그들에게 묵직하게 다가가는 개념입니다. 말이 주는 의미 자체가 우리나라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거죠.
그런데 가만 보면요. '수치'는 단독으로 쓸 수 없는 말입니다. 집안의 수치, 게이오의 수치, 일본의 수치, 라는 식으로 전후 맥락이 있어야 해요. 배경이 되는 집단, 조직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개인 한 명을 두고 넌 수치야! 할 수 없는 것처럼요. '〇〇의 수치'라는 표현이 일반적입니다. 〇〇라는 집단에서 요구하는 상식, 문화, 흐름, 분위기, 규율을 위반한 사람에게 '수치'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식이지요. 그렇다면 〇〇가 어떤 집단이냐에 따라 요구되는 행동도 달라지겠죠? 게이오의 수치라면, 나를 제외한 게이오 대학생들이 나를 손가락질한다던가, 집안의 수치라면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장면이 떠오르죠. 전자는 학생으로서의 과실, 도덕적이지 못한 행동이 될 수 있다면 후자는 가훈에 어긋나는 행동일 수 있겠습니다.
그냥 듣고 기분 나쁜 말이 아니라 그 이상을 넘어서서 나의 체면, 집단에 대한 소속감, 주변 사람들의 시선, 낯뜨거움, 민폐, 자존심, 사회에서 도태된 존재... 와 같은 단어까지도 연상하게 됩니다. '집단 내 개인'이라는 전제라는 건 집단 전체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느낌을 주지요.
우리는 어떨까요? 제가 직장 동료와 언쟁이 생겼다고 해서 "당신은 우리 회사의 수치야!" 한다면 "남이사." 정도의 대답이 돌아올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욕이라 하기엔 조금 고급스러운 표현이죠. 쌍시옷 남발하는 욕설이 난무하는 마당에 '수치'라는 두 글자가 정직하게 등장해버리면 아마 모두의 어안이 벙벙해질 겁니다. "뭐야, 뭐래는 거야."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욕설은 대부분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동물에 비유한다던가(개새끼), 정신상태를 비하한다던가(미친놈), 모든 욕의 시발점이 되는 단어(18)를 붙인다던가요. 성질, 특징, 외형을 비유하거나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식입니다. 요즘은 민폐라는 말도 종종 쓰는 모양이지만, 피해를 주는 사람, 정도로만 해석되지요. 일본에서 말하는 민폐(迷惑)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눈길을 끄는 단어가 있어요. '폐급'이에요. 아마 이 단어가 낯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병장 황장수가 본인이 자주 괴롭히는 후임 조석봉 일병을 부를 때마다 '이 폐급 새끼야!'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극 중 조석봉 일병은 업무역량이 떨어지거나 인격에 문제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 일본 만화를 본다는 이유로 오타쿠(オタク)라고 불렸고, 수더분하고 착한 성향이라 곧잘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죠.
2010년대 육군 만기 전역한 한 지인은 '폐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군대에서는 사람을 두 가지로 평가해요. 폐급과 에이급. 눈치 없고 일 못하는 군인을 병사들끼리 폐급이라고 불러요. 눈치 있게 일 잘하는 군인은 에이급이라고 부르고요."
원래는 보금품의 상태를 판정할 때 사용하는 말인데요. 상태가 좋은 '특급'이 있다면 폐기를 해야 할 등급인 '폐급'도 있는 거죠. 비교대상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립니다. 집단 내 일을 잘하는 사람을, 눈치가 빠른 사람을, 죄다 빼고 남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호칭이 '폐급'이니 말입니다.
일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이 '수치'라는 말을 유독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만큼 '집단'이란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집단이 추구하는 바가 중요하고, 어긋나서는 안 되는 행위들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죠. 그 룰을 어겼을 때 집단 내 개인을 향한 비판이 이루어지는데, 그 비판은 어떠한 욕설보다도 치명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집니다. 집단 내 개인을 향한 비판이 우리에겐 군대언어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표현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