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작은 선술집. 밤 10시가 조금 지난 시각. 연갈색 트렌치코트를 걸친 여성이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요. 따뜻한 정종 한 잔 주문하는 그녀의 목소리엔 취기가 묻어 나왔습니다. 사근사근하면서도 상냥한 애교가 섞인 말투입니다. 의자에 앉아 옷 매무세를 가다듬는 손짓엔 일말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겠다는 야무짐이 배어있었죠. 여성은 꽤 많은 술을 마신 듯해 보였지만, 티 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는 모습이 한편으론 우아해 보였습니다.
한 번 보면 또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어요. 사실 여성이 등장한 순간부터 그 작은 가게에 앉았던 남성 전부가 힐끔힐끔 그녀에게 시선을 내어주고 있었죠. 고깃집 아르바이트 끝나고 한 잔 하러 들렀던 저와 아르바이트생 몇 명, 주방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문한 정종을 한 모금 넘긴 그녀가 요리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주방장이 말문을 열어요.
"잘 봐 둬. 자고로 여자는 취해도 저런 모습이어야 하는 거야."
스물세 살이었던 저의 눈에도 그 여성은 멋져 보였습니다. 술에 취해 길바닥에 널브러지고,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또래 사이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었죠. 여성에게 매료되었던 목소리나 행동에 묻어 나오던 절제력이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자세를 고친다던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유지하려던, 그 조신함이요. 그럼에도 주방장의 한 마디로 전해진 왠지 모를 옥죄는 느낌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은, 그 강박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라는, 벗어날 수 없을 거란 무력감을 절감했거든요.
일본에는 야마토 나데시코(大和撫子)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언뜻 누군가의 이름처럼 들리는 이 단어는 일본의 옛 이름인 야마토(大和)와 패랭이꽃을 뜻하는 나데시코(撫子)가 합쳐진 말입니다. 가련하고 청초한 아름다움을 일본 여성들에 빗대어 사용하는 건데요. 한마디로 이상적인 여성상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연상되는 건 소박함, 조신함, 순종적, 조용함, 수줍음, 지조, 가사나 요리에 능통한 모습이지요.
13년 전의 기억입니다. 요즘의 일본에는 예전처럼 여성들에게 야마토 나데시코의 강박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남녀 차이는, 언어 속에 아주 깊숙한 형태로 남아있지요.
"이거 진짜 맛있다. 더 먹고 싶다."
이 말은 남자가 한 말일까요. 여자가 한 말일까요. 성별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A : これマジうめーな。もっと食いてー
(이거 진짜 맛있어. 더 먹고 싶은데?)
B : これ本当に美味しいね。もっと食べたい。
(이거 참 맛있네. 더 먹을래.)
*최대한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다르게 번역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A는 남성, B는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같은 뜻인데 어떻게 다를 수 있지? 싶습니다만, 번역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명확한 말투의 차이가 있습니다.
일본어 과외를 했던 시절, 더듬더듬 문장을 만들어내는 걸 들으면 일본어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원피스(일본 애니메이션) 보셨어요?"라던가 "야쿠자 나오는 영화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상대방이 깜짝 놀라요. 남성어, 여성어, 직장 언어, 야쿠자 언어처럼 상황별 대상별로 쓰는 언어의 경계선이 우리보다 뚜렷한 까닭입니다.
남성어와 여성어의 구분도 예전보단 많이 사라진 추세라지만, 어감은 다르기에 구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한국어엔 없지만, 일본어에는 문장 끝에 붙는 조사 역할인 '종조사'라는 성분이 있는데요. 예컨대 오이시이(おいしい)에 조(ぞ)나 제(ぜ)를 붙이면 남성어에 가깝고, 와(わ)나 노요(のよ)를 붙이면 여성어에 가깝습니다. 말의 끝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셈이지요.
제가 아르바이트하던 고깃집 매니저는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역하자마자 일본에 건너와 일자리를 잡고, 결혼한 뒤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데요. 오자마자 일본인 여자 친구를 사귀면서 일본어를 배운 케이스입니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한국말을 할 땐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시원시원한 파워가 돋보이는 인상인데 일본말을 쓰기 시작하면 이상하리만큼 다소곳해집니다. 아내의 말투를 고스란히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종종 일본 드라마를 본 친구들이 물어봅니다.
"일본어로 맛있다는 오이시이(美味しい)인 줄 알았는데, 우마이(旨い)하던데 그것도 맛있다는 뜻이야?"
둘 다 맛있다는 뜻입니다. 누가 말하느냐의 차이지요. 오이시이(美味しい)는 좀 더 높은 확률로 여성들이 많이 쓰지만 남성도 종종 씁니다. 우마이(旨い) 역시 남녀 둘 다 사용하지만, 야마토 나데시꼬라면 그런 표현은 쓰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지요. 우마이(旨い)를 우메-(うめー)라고 발음하면 좀 더 거친 남성적 표현으로 간주되는데요.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니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말투를 교정해나갑니다. 우메-라고 하던 친구들이 오이시이네- 라고 말투를 바꾸어가는 셈이지요. "이제는 여자로서 저런 말을 쓸 나이는 아닌 것 같다."는 친구들을 보며 야마토 나데시코가 비단 옛날이야기만은 아니란 걸 체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라는 일인칭 대명사도 남녀별 차이가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오레(俺)나 보꾸(僕), 여성은 아타시(あたし)를 주로 사용하는데요. 중성적인 의미나 간혹 의도적으로 오레(俺)나 보꾸(僕)라고 표현하는 여성을 본 적은 있지만, 상당히 드뭅니다. 남성이 아타시(あたし)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요.
홉스테드의 문화차원이론에서 일본이 전세계 1위를 달리는 항목은 '남성성(Masculinity)입니다. 지수가 높을수록 남성적 사회라는 건데, 한국은 39인 반면 일본은 95에 달하지요.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용어가 등장하다 보니 어떤 의미일지 살짝 의아한 부분이 있을 텐데요. 남성성이 낮다고 해서 양성평등이 잘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향은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론 성 고정적 역할을 얼마나 수긍하느냐의 차이입니다. 남자는 이래야지, 여자는 이래야지, 라는 성고정 관념이 견고할수록 지수가 높은 셈입니다.
물론 남녀의 성차별, 성인식과도 일부 관련이 있지만, 홉스테드가 정의한 남성적 사회란 '성취와 승진, 단련, 경쟁'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경우를 뜻합니다. 일하기 위해 산다거나 경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이 가치들은 학교를 입학하는 순간부터 개개인에게 적용되어서 사회에 나와 조직생활 전반에 걸쳐 지속되는 식입니다.
반면 그 값이 낮은 여성적 사회는 정서적 관계, 겸양, 약자에 대한 배려, 안정적인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삶의 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인에게 상냥하게 대하도록 권장하는 사회를 선호한다고 나타나지요. 관계와 합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협력과 고용안전을 중요시한다고 일컬어집니다.
일본 사회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들여다볼만한 에피소드는 넘쳐납니다만, 다루기 조심스러운 부분인 데다 언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편이 재미있을 테니 다음 소재로 일본 넷플릭스 '테라스하우스'에 등장하는 성역할, 성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고정된 성 역할이 견고하게 존재한다면 그만큼 요구되는 눈치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