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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어버이날_
어느 날 여동생이 말했다.
"얼마나 효도가 부자연스러운 마음이면 나라에서 기념일을 다 정하겠어!"
그 문장을 듣는 순간 당연하다고 여기던 세상사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결혼을 하니 부모님이 늘었다. 나를 낳고 기른 부모가 아닌데도 기념일을 챙기고 어버이날이 되면 효도라는 예의를 갖추기 위해 식사 대접을 했다. 아니, 해야 했다. 내 부모님도 잘 챙기지 않는 내가 남편의 부모님을 챙기는 일은 세월이 지나도 참 번거롭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동생의 말이 더 와닿았다. 내리사랑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런 마음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나 치사랑은 맨날 잊어버리기 일쑤고 나라에서 정한 날이나 생신 때가 다가와야 그런 마음을 꺼내 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효도라는 명목에 걸맞은 선물을 고르는 일에 더 마음을 쓰게 된다. 이러다 보니 적어도 내게 치사랑은 내리사랑에 비해 결코 자연스러운 감정은 아닌가 보다.
두 아이와 함께 살아온 지 20 여 해가 넘어간다. 내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는 시간이다. 매일매일이 어버이날이다.
그럼에도... 어버이날 주간이 되면 은근 기대를 한다. 올해는 좀 특별하다. 두 아이 모두 주민등록증을 가진 어엿한 대한민국 성인이 되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카네이션을 만들고 손 편지를 쓰는 행사’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기념일을 챙길 나이가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웬걸 어버이날 전날이 되어도 아무런 낌새가 없다. 저녁타임 아르바이트를 가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오는 아들에게 물었다. 혹시 어버이날이 언제인지 아느냐고.
아들은 대뜸 동생을 불렀다.
"김 00! 알지? 내가 알려준 대로 준비 잘하고 있어!"
"그럼! 오빠! 걱정 마."
아들이 나가고 딸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둘이 계획이 있었어?"
"당연하지! 엄마... 깜짝 놀랄 거야!"
그날 밤 나는 어떤 선물일지 온갖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세 살 터울의 두 아이는 어릴 적 틈만 나면 방에 들어가 공연준비를 했다. 때론 CF를 패러디했고, 때론 내가 즐겨보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연하기도 했다. 아들은 연출을 딸은 배우를 맡았다. 딸은 오빠의 지시대로 곧잘 울거나 웃었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일도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나와 남편은 매일 보는 그 공연들이 처음엔 기특하고 흥미로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박수소리가 작아졌다. 그 후 자연스레 아이들은 공연을 하지 않았다. 혹시 이번 어버이날 그 공연이 다시 시작되는 건 아닐까! 기대는 나도 모르는 새 한껏 차올랐다.
어버이날 저녁 집에 돌아온 아들은 분홍색 카네이션 한송이를 오다 주운 거마냥 식탁 위에 툭 떨어뜨렸다. 딸과 나란히 앉아있던 나는 그게 다냐고 물었다. 딸은 씩 웃었다.
"엄마... 나도 정말 깜짝 놀랐잖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갑자기 나더러 준비 잘하고 있으라 해서..."
그럼 그렇지. 내 새끼가 맞다.
효도가 뭐 그리 별거인가! 이렇게 서로 보고 웃으면 되지.
그 효도... 나도 이제 시작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