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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입니다 Nov 02. 2016

광장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만 떠오른다.

진실과 선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올바름과 정의는 어디에 숨어있는가.

폭력적이거나 부패한 사회는 소통을 막는다. 소통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나중엔 책임을 전가할 대상을 찾아 더 폭력적으로 된다. 


거리는 조용해졌다.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 같던 열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바꾸고자 했던 것은 제자리걸음이 되었다. 우리의 연대도 하나의 현상으로 남았을 뿐이다.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함께 했던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  



교복을 입고 섰던 그 초여름의 광장에, 초겨울이 되어 황망히 나왔다.  

본격적인 겨울이라기엔 살짝 이른데도 바람은 매서웠다.    

어느 때보다도 소란한 시대의 가장 불행한 세대로 여겨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어, 나도 촛불을 들고 시린 입술을 달싹였다.


구호를 외치는 내 목소리가 좀처럼 힘 있게 뻗치질 못하고 시름겹게 새어 나왔다. 팔 년 전과는 너무 다르게.  

우리가 정말 무언가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아래 외쳤던 그때의 뜨거운 응어리들은 광장 구석구석에 재처럼 하얗게 들러붙었다가, 소리 없이 흩어졌다. 그날의 연대는 인터넷문화의 실패한 혁명으로 평가되거나 또는 '선동당한 어리석은 자들의 예'로 조롱을 당하기도 하면서 간간이 회자됐을 뿐이다.  


교복을 벗고 나서도 육 년이 더 지난 이십 대의 주변부에, 나는 이 곳에 다시 나왔다. 

팔 년 전 그날 초등학생이었던 친구들은 이제 교복을 입고 나왔을 테고,

그날 유모차에 태워졌던 어린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나왔을 것이다.

결코 짧지 않은 그 시간을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통과했다. 

흩어졌던 것들은, 흩어졌던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건조하고 싸늘한 한기에 부르트는 손등을 한번 바라보고,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맥없이 갈라지던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었다. 이번 겨울은 달라야 해서. 거짓이 난무하는 이 곳에 숨어있는 정의를 어떻게든 끄집어내야 해서. 나를, 저들을, 그러니까 우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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