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약돌 하나를 쥐고 있는 듯하다.
쉴 때, 걸을 때, 운전할 때, 잘 때 등 거의 모든 시간에 아내의 손을 잡고 있다. 그냥 나의 손이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늘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잡을 때마다 느끼지만 손이 참 작다. 아담한 키에 걸맞긴 하지만 어쨌든 작다. 그리고 차갑다. "왜 이렇게 차가워?"라고 물으면 수족냉증이란다. 괜찮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니깐.
잡은 손이 유독 차갑다고 느껴질 땐 손바닥을 맞잡기보다는, 아내의 손가락을 하나씩 굽혀 주먹을 만든 다음 보자기처럼 아내의 손을 감싼다. 내 손바닥이 오롯이 아내의 손을 덥고 있으니 그녀의 손등까지 데울 수 있다. 그렇게 쥐고 있으면 안 그래도 작은 손이 더 작게 느껴진다. 마치 조약돌 하나를 쥐고 있는 듯하다.
짧은 다리는 또 어떤가. 아내의 키에 부족함이 없지만, 180이 넘는 내가 볼 땐 확실히 짧다. 커피나 술을 마시러 가면 가끔 바(bar) 테이블에 앉을 때가 있는데, 그럼 아내의 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못하고 대롱대롱 흔들린다. 그 모습이 마치 처마 밑의 풍경추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귀여운 모습의 백미다.
아내의 작고 짧은 신체부위가 귀여움을 발산하는 순기능을 한다면 역효과도 있다. 싱크대의 상부장이나 수납장 맨 위층 서랍에서 물건을 꺼낼 때 여지없이 나의 이름이 불린다는 것이다. 귀찮은 일이지만 선심 쓴다는 듯, 때로는 측은하게 혀도 차면서 물건을 꺼내주면, 아내는 씩씩거리며 키다리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향해 봉기를 일으킬 거라고 한다. 난쟁이들을 규합하여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거라나 뭐라나.
그밖에 그녀의 작은 종아리, 발바닥, 핸드폰 스크린 위를 왔다 갔다 하는 엄지손가락 등은 말해 무엇하랴. 작은 모든 것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작은 신체부위를 볼 때 사랑의 충만함을 느낀다고 아내에게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랬더니 왜 자신의 전부가 아닌 작은 부위를 보고 사랑을 느끼냐고, 이상하다고, 변태라고 한다.
만약 아내의 신체 일부를 보고 사랑을 충동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변태라면, 나는 그냥 변태가 되련다.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람. 더 심한 말도 괜찮다.
아내 눈에는 일개 변태지만 마음 한 켠에는 대장부의 각오가 있다. 무시무시한 일들이 왕왕 일어나는 세상 속에서, 지금 쥐고 있는 이 조약돌을 어떻게든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각오는 결혼이래 잉태되어 시간이 흐를수록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이다.
내가 능력이 좋으면 얼마나 좋겠나. 솔직히 회사 안에서 자기 앞가림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의 능력과 한계에 상관없이, 마음속에 품은 그 각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적으로 완수해야 한다. 뉴스에서 전해 듣는 이 해괴망측한 세상을 그녀 홀로 상대하게 할 수는 없다.
고로 나는 평생 아내를 지키고 돌보기 위해 아내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아내도 동의했다. 같이 하늘나라에 가면 최선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본인이 먼저 가겠다고 수차례 엄포를 놓았다. 남편이자 변태, 그리고 이기주의자라는 역할이 추가되었다. 부캐가 많아져 여러모로 바빠지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역할을 한치의 부족함이 없이 완수해야 한다.
그리고 완수할 것이다.
* 위 글은 24년 4월 말에 쓴 것인데, 오늘 거제에 있는 몽돌해변을 다녀오니 아내의 주먹이 몽돌과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몽돌로 비유함이 더 맞아 보이지만, 당시 글을 쓸 때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남기기 위해 조약돌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