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마와 탈모, 그 사이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자른다. 콩나물은 물이라도 줘야 하는데 얘네들은 그냥 쑥쑥 자란다.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
매번 동일한 질문을 받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어떤 스타일이든 크게 개의치 않는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니, 결국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요'라고 둘러대려다가 입을 닫았다. 헤어디자이너분이 고깝게 들을 수 있어서다. 대신 자연스럽게 웃으며 "알아서 잘해주세요."라고 답했다. 최대한 그분의 신경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이 시간부로 내 머리는 오롯이 그분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입 한 번 잘못 놀렸다가 한 달간 못난이로 살 수 있다.-실제 그런 경험을 몇 번 했다-
"머릿결이 좋으시네요"
헤어디자이너분은 왼손으로 내 머리를 쓸어 넘겨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난생처음 듣는 소리다. 립서비스임이 분명하다. "아, 그래요"라고 형식적으로 대답하고는 거울을 보는 척이라도 하자는 생각에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웬걸. 거울에 비친 나의 머리털은 정말 좋아 보였다. 헤어디자이너의 지휘에 따라 춤추고 있는 그들은, 마치 물결 따라 움직이는 바닷속의 해초 같았다. 인상적이었다.
좋은 소식은 나눌수록 배가 되니 집에 가자마자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최소한 '오~' 정도의 호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자기야! 모발이 가늘고 부드러운 것은 탈모의 전조증상이야!"
충격이었다. 머리카락이 하늘거렸던 것은 기력이 없어서란다. 아내는 건강, 보건, 미용분야의 지식이 나보다 몇 수 위다. 그러니 잘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니리라. 실제로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보니, 머리숱이 더욱 휑해 보였다. 단순히 가르마 때문에 살짝 없어 보이는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의심은 연기와 같았다. 한 번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음을 자욱하게 만들었다.
여태껏 대머리가 될 거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그 믿음의 기초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만에 하나 탈모가 시작되었다면 어쩌지? 이를 지연시킬 방법은 없을까?' 불행히도 그딴 요행은 없었다. '정말 머리카락들이 조기 은퇴를 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수고했고, 이제 너희들의 역할은 끝난 것으로 보이니 조금 이르긴 하지만, 안녕.'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되려 마음이 편해졌다. 진정이 되니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내가 느낀 그런 원망과 억울함은 애초에 없었어야 하는 게 맞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은 대머리가 될 수 있어도 나는 안된다는 생각부터가 틀렸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나 듣던 님비 현상이 내 머리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 희망의 끈은 유효하다. 가르마 때문인지 탈모 때문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일부터는 오른쪽으로 가르마를 타던 것을 잠시 멈추고, 왼쪽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오른쪽 머리숱이 없어 보인다면, 그땐, 그땐, 진짜 체념하려 한다.
불행 중 다행스러운 소식이 아내로부터 들렸다. 혹 내가 대머리가 되어도 나를 사랑해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끔 길에서 모른 척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사랑은 할 거라고 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혹시 몰라 몇 번이고 확답도 받았다.